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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산사기행] 마이산 탑사(塔寺)를 찾아서<순천 ‘다연사’ 성지순례단과 함께하는 > 2007년04월05일(Thu)
1백여년의 풍상 속에도 끄덕없는 불가사의의 탑
자연석 조탑…기발하고 독창적인 착상에 경탄
 <잠들었던 봄꽃들이 움트기 시작한 어느 화사한 봄날 순천시 낙안면 창녕리에 소재한 ‘다연사(多緣寺, 주지 원국스님)’에서는 신도들(정각회 회장 박재열, 정불회 회장 서정자 외)의 성지순례 행사를 ‘마이산 탑사’ ‘백양사’ ‘용주사’로 정하고 신도 70여명과 함께 순례를 했다. 본 기자는 이들 순례단과 함께 마이산 탑사를 취재하기 위해 동행했다. 불가사의한 자연석 축조자의 주인공 이갑룡 처사의 행적과 놀라운 정신력의 세계를 둘러 본다.>


마이산 탑사로 가는 길에는 개나리, 벚꽃 등이 예년보다 이르게 움텄고, 들녘의 농부들은 올해 농사를 풍년으로 만들겠다는 다짐인 듯 부산함이 엿보였다.

출발한 지 2시간이 가까워지자 창밖으로 조선임금 태종이 “산의 형상이 쌍으로 쭈빗함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馬耳山)’이라고 이름 지었던 바로 그 산이 장관을 이루며 자리 잡고 있었다.

탑사(塔寺)에 도착하자 돌로 쌓은 기이한 탑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제일먼저 눈에 뜨인 탑은 천지탑(天地塔) 이었다. 천지탑은 가장 큰 탑으로 그 웅장함을 드러내 ‘불가사의’라는 표현이 과언이 아님을 증명하듯 기세를 뽐내고 있었다. 이 탑은 탑 축조자 이갑룡 처사가 3년에 걸쳐 완성했다고 한다.

또한 약사탑(藥師塔)은 기울림의 각도가 심한데도 쓰러지지 않고 기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른바 ‘기울린 약사탑’이라고 했다.

섬진강의 발원지라고하는 ‘용궁’ 샘물도 신선함을 유지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마시곤 했다.

형형색색 옷을 입고 전국 각지에서 기이한 탑들을 구경하러온 관광객들은 감탄사를 감추지 못했고, 신비한 탑의 형상에 도취되는 모습도 역력했다.

▶탑을 축조한 이갑룡 처사

이 탑들을 축조했다는 이갑룡 처사(자:갑룡, 호:석정, 본명:이경의)는 1860년 임실군 둔덕면 둔기리에서 전주이씨 효령대군 16대손으로 출생했다. 구한말 시기적으로 어려운 때에 지혜는 총명 했지만 가난한 양반 집안으로 서당에 다니지 못하고 창호지 틈으로 새어 나오는 글소리로 학문을 읽혔으며 군불에 나무를 지피고 앉아서 나무 가락으로 땅바닥에 글을 쓰며 틈틈이 일하면서 공부에 열중했다.

16세 때 부모님을 여의고 부모님 묘소 옆에서 움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 살이를 하다 인생의 삶과 죽음의 인생 허무무상을 탄식 하다가 19세 때 시묘 살이를 마치고 전국을 만행 하면서 속세를 떠났다.

외로움을 달래며 이산 저산, 이절 저절에서도 자리 잡지 못하고 결국 고향에서 농사나 지으며 인생을 살아야지 하며 전국을 누비다가 거창에서 장수로, 임실 둔덕으로 넘어갈 무렵 어느 두 봉우리가 이갑룡을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가 1885년경 나이 25세 되던 해 젊음을 이곳에 묻기로 한 것이다. 이갑룡은 유·불·선에 바탕을 두고 龍華世界(용화세계)의 실현이 이상적이라 믿고 구도의 행각 끝에 수도에 들어갔다.

마이산에서 남자산이라는 지리산이 200리, 여자산이란 계룡산이 200리, 그 한복판의 마이령봉은 남녀 두 봉우리가 역역하고 그 절묘함이 어느 곳에 비할 수 없어 그 정기로 사바세계를 개척 하리라 마음먹고 중생 구제를 위해 고행을 자처하며 1기, 2기 쉬지 않고 탑을 쌓기 시작했다.

세속과는 완전 등진 채 낮에는 돌을 날랐고 밤에는 기도 하다 자시(子時)에 돌탑을 하루에 한 층씩 30여 년 동안 인간의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108기의 탑을 쌓으면서 108 번뇌를 해탈 하고자 108개의 석탑을 구상 자연석을 탑촌으로 하나 둘 올려놓으면서 뭇 중생이 짓는 죄를 대신해 비는 기도로 일관 하며 탑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힘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큰 돌로 기초를 쌓고 그 위에 돌탑을 완성 했으니 이미 석정(이갑룡 처사의 호)은 그때부터 영의 힘에 의해 그 같은 일을 했을 것이라고 탑을 보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더욱이 받침대(기둥) 하나 없이 가파른 탑신을 축지법으로 오르내리며 누구의 도움 하나 빌리지 않고 쌓았다. 돌탑들은 전국의 명산 각지를 순례할 때 산항에 기도하고 돌아올 때 한 덩어리의 돌이라도 배낭에 지고 와서 탑신에 섞어 쌓았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자연석 탑군 축조

이러한 자연석 석탑은 세계 조탑사에 비추어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자연석으로 탑군을 축조 하였는데 주탑인 천지탑은 같은 형태로 원형의 기단부로부터 70% 정도로 타원형인 포물선을 그리며 유유히 뻗어 상륜부에 해당하는 윗부분은 잔석으로 괴여 힘이 눌리고 흔들릴 때 완충 역할을 하고 자연판석을 그대로 올리고 높이 15m로 쌓아 올렸다 한다.

원추형으로 쌓은 두 천지탑은 알맞게 조화를 이룬 수법은 역학적인 면에서 보다 자연석으로 조탑 했다는 기발하고 독창적인 착상에 경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탑의 신비와 가치는 그러한 축조 기술보다 하나 하나의 조형미와 전체적인 조화미에서 오는 감동인데 펑퍼진 기단부로 부터 유연히 뻗어 오른 선의 미와 육중한 탑신의 중량감에서 탑봉의 예각이 주는 섬세 하면서도 신비한 아름다움을 주는 법열이다.

더군다나 돌로 이어지는 패턴은 절묘함과 처연한 아름다움을 더하고 높고 낮고 크고 작은 탑의 배치는 단순한 가운데 다양한 변화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모든 탑군은 저마다 입부리를 하늘을 향해 애절한 염원을 소원 하는듯 하다.

자연석과 같은 암반으로 형성된 마이산의 산세를 이용하여 이 공간에 높고 낮고 체감률이 뾰쪽한 탑과 원추형의 탑을 알맞게 조화시켜 황홀하게 구조한 배치의 솜씨는 범 중생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천지탑, 일광탑, 월광탑, 약사탑, 중앙탑, 월궁탑, 용궁탑, 신장탑, 등 배열은 팔진도법을 적절히 이용하였으며 각각 다른 탑형은 음, 양의 이치를 살렸으며 높고 낮은 구조는 환생과 오행의 이치와 조형미의 극치를 이루고 신비의 전경을 이루게 했다.

▶모진 풍상에도 꺾이지 않는 불가사의

접착제를 쓴 것도 아니고, 시멘트로 이어 굳힌 것도 아니며, 더더구나 홈을 파서 서로 끼워 맞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1백여 년의 풍상 속에 태풍과 회오리바람에도 끄덕없이 견고하게 버티고 서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100여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이 탑들이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탑들이 위치한 곳은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사이의 계곡인데 이곳에는 유난히 세찬바람이 사시사철 불어오고 있다. 지형적으로 앞쪽이 넓고 뒤쪽이 좁은 계곡이어서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쳐 오는 곳이다.

특히 여름철 태풍이 불어오면 옆 언덕의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웬만한 나무는 뿌리째 뽑혀 나가지만 이곳의 돌탑들은 조금씩 흔들리기만 할 뿐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런 접착물 없이 서로 맞닿아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다.

▶음양의 조화와 축지법의 힘

이런 놀라운 돌탑의 축조비법은 무엇이고 100년 풍상을 견뎌낸 돌탑의 신비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낮에는 돌을 날으고 밤(자시)마다 하루 한 개씩 정성으로 올렸고, 음의 날에는 양에 돌을 올리고 양의 날에는 음에 돌을 올렸다. 또한 탑을 쌓기 위해 자리를 잡고, 다음 올라갈 음양 돌을 앞에 놓고 좌선을 하면서 천기를 받아 지기를 올리고 온 몸에 기를 넣어 자시에 정확히 단번에 올려 작은 돌맹이로 고정시킨다.

탑을 쌓은 것은 2가지 방식이 있는데 피라밋 형식과 일자형 탑인데 피라밋 형식의 탑은 팔진도법에 의해 타원형으로 돌아 올라가며 밖으로 돌을 쌓고 안으로 자갈을 채우고 그 속 가운데 비문을 넣고 올라가며 쌓은 것이다.

또한 맨 꼭대기 마지막 돌을 올리는 데는 100일의 정성기도 후 올렸고 피라밋 상단부분에는 잔돌로 자리를 만들고 그곳에 우물 정(井)자로 나무를 고정시킨 후 그 위에 올라서 음양 돌을 올렸다 한다.

정성도 정성이지만 이갑룡의 진법과 기공법등 축지법의 힘이 사용되었다 한다. 이갑룡 처사는 축지법을 39살부터 터득하였는데 이때부터는 몸이 가볍고 사뿐히 다니는 등 아무리 무거운 돌도 ‘으흑음!’ 하고 소리를 내면 거뜬이 돌을 들어 올렸다 한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이야기는 이갑룡 처사는 매일 다람쥐 바퀴 돌 듯 돌만 들고 다니거나 산속에서 혼자 앉아있거나 암·수 마이산을 오르내리고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에 강목천을 묶어 놓고 건너갔다 왔다 하는 것을 본 이도 있다고 한다.

또한 전주(全州)를 단숨에 갔다 왔다하는데 당시 진안경찰서장이 찾아와 면담을 하고 전주에 갔는데 벌써 이갑룡은 전주에서 볼일을 다 보고 진안으로 오는 것을 보고 “아니 언제 전주에 오셨습니까?” 물으니 “당신이 나가고 나서 바로 출발해서 왔네” 하니 그 사람은 아니 놀랄 수 없다고 한다.

이렇듯 이갑룡의 축지법에 대해 많은 이들이 목격하고 이 탑을 쌓는 데는 축지법이 아니고서야 이러한 불의의 명작을 축조할 수 있겠나 생각된다.
 이와 같이 불가사의한 이 현상은 이갑룡 처사의 정신력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다연사 성지순례단 일행은 탑사에 대한 모든 유래를 읽히고 이갑룡 처사의 정신력을 본받아 불심(佛心)을 넓히기로 약속하고 탑사의 순례를 마쳤다.

이어 1400여년전 백제시대의 고찰로 유구한 역사와 주변의 빼어난 경관으로 명성이 높은 장성 ‘백양사’를 들러 ‘원웅’ 큰스님의 설법을 경청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곡성군 오산면에 소재한 ‘용주사’에 들러 한국전쟁 때 무고한 양민을 참혹하게 처형했다는 석굴을 들러 추모 기도를 한 후 무사히 성지 순례를 마치고 돌아왔다.   



☞마이산 탑사의 역대 인물사
  ▲ 제1대 탑의 축조자 이갑룡 처사
 ?본명 : 경의  ?호 : 석정?1860~1957 전북 임실 태생?전주이씨 효령대군 16대손?25세때 마이산에 입산하여 수도중
    중생의 죄업을 씻고자 고행탑, 중생탑을  축조(1886~1928)
    저서 : 신서 30여권

제2대 이도생
?본명: 기동 ?호: 쌍암?1912~1985 전북 진안 마이산탑사 태생?전주이씨 효령대군 17대손

제3대 이혜명
?본명: 왕선 ?호: 원암?전북 진안 마이산 탑사 태생?전주이씨 효령대군 18대손 ?현 마이산탑사  조실

제4대 이진성
?본명: 재동 ?호: 도암?전북 진안 마이산탑사 태생?전주이씨 효령대군 19대손 ?현 마이산탑사  주지

[전만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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