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여유롭고 평화스러우며 풍성한 계절이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와 거센 빗방울을 견디며 심한 바람에도 꽃을 피우고 결국엔 튼실한 열매를 맺었다.
농부의 땀과 거친 손길로 정성스럽게 가꾼 곡식은 받은 관심 이상으로 보답을 하며 알찬 결실로 다가왔다.
이제 완연한 초가을 날씨로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못해 싸늘한 기운이 감돌고 계절의 변화가 피부로 느껴진다.
가을을 상징하는 코스모스가 얼굴을 펴고 약한 바람결에 싫지 않은 흔들림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결실을 기다리는 열매들은 농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제 빛깔을 만들며 한껏 뽐을 낸다.
내일이 백로(白露)다. 백로는 처서(處暑)와 추분(秋分) 사이의 절기로 들녘의 농작물에 흰 이슬이 맺히고 가을 기운이 완연히 나타나는 때이다. 이때가 되면 맑은 날이 연이어지고 기온도 적당해서 오곡백과가 여무는 더없이 좋은 날이 된다.
‘백로에 비가 오면 오곡이 겉여물고 백과에 단물이 빠진다’하여 오곡백과가 여무는 데 지장이 있음을 걱정했다. 초가을로 접어든 시기라고 하지만 아직 지난날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일까.
계절은 정상적인 흐름으로 변화하려고 하는데 다가오는 계절을 시기하는 여름의 마지막 몸부림이 남은 듯 하다. 자연은 순리대로 움직이고자 하는데 그 어떤 변덕은 자연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았다. 꽃이 열매가 되고 다시 그 열매가 씨앗이 되어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식물은 자신의 일생을 자연의 변화에 맡겨야한다. 이러한 변화에도 식물의 생체리듬은 변화된 기후에 적응을 하고 바뀐 환경을 자연의 섭리인양 받아들인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있는 그대로 두기보다는 자신이 편리하고 유리한대로 이끌어 가려고 한다. 변화에 순응하는 자연 생태계와는 달리 인간의 힘은 자연환경까지도 변화시키게 만들었다. 그 결과로 인간에게는 유익한 과학의 발달과 함께 도시의 환경은 발전되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많은 도구들이 개발되어 인간들의 유익한 삶을 보조하게 되었으나 그 만큼 자연은 사라지고 또 죽어야하는 운명을 겪게 되었다.
숲이 있던 그 자리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나고 사계절마다 제 빛깔로 발하던 자연이 이제 사철 변하지 않는 환경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곳을 지나던 공기도 신선함을 잃었고 터전을 잡고 살던 동물과 식물들도 자리를 떠난 지 오래 되었다.
결국 인간의 욕심 때문에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변하게 되었지만 계절은 그 느낌이 예전과 다르고, 받아들이는 시간의 차이가 있어도 어김없이 찾아오고야 만다.
지나버린 계절은 이미 과거의 시간으로 묻힌다. 지난 여름의 무더위와 각종 사건들이 점차 우리의 머릿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은 계절이 바뀌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좋지 않은 기억을 빨리 비움으로써 좋고 신선한 생각을 채우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가을은 수확하는 자에게는 풍요의 기대를 주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풍경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아직 그 색채가 무르익지는 않아 푸른빛이 바탕으로 펼쳐있지만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푸름은 홍(紅)으로 황(黃)으로 바뀌고 온 숲이 여러 가지 색의 조화에 물들 것이다. 그 색을 좇아 많은 인파들이 찾아들어도 계절에 맞는 분위기로 심술 없이 그들을 포용한다.
저마다 느끼는 감성이 틀리고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가 다르더라도 이 가을은 모든 이의 가슴에 다가와 있다. 우리의 윤택한 경제도 그리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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