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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움과 채움 |
2013년11월12일(Tue) |
| 박상주 객원논설위원·시인 |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이는 ‘옛 마을을 지나며’이란 김남주 시인의 한 구절이다. 지난 7일이 바로 찬서리는 내리고 집 한 쪽 감나무 끝엔 까치밥만이 남아 호올로 외로운 때가 입동(立冬)이다.
바야흐로 겨울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입동에 맞지 않는 만추의 계절이다. 요즘 등산하기에 알맞은 계절로 산을 오르다보면 조금만 더 올라 정상에 서려는 욕심이 생기곤 한다.
도심을 걸으면 쉬 지치지만 산길은 갈수록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고 땀을 흘려도 상쾌하며 새 힘이 돋는다. 영국의 시인 ‘워즈워드’는 자연은 우리에게 순수성의 아버지라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등산길에서는 모르는 사람끼리도 인사를 한다.
도심길에서 모르는 사람과 인사하는 일은 없으나 산에서 만난 사람은 그렇지 않다. 왜 일까? 인사도 자연의 순수성에 마음의 문이 열려서, 내가 기쁘니 상대방도 그러리라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작용하였을 수 있다.
기분이 좋아 보이고 웃는 사람 옆에는 사람이 모이지만 성난 인상을 짓고 있으면 인사는커녕 눈치보고 자리를 슬그머니 피하는 것이 현실이다. 산길 걸으며 싸우는 사람도 없고 화내는 사람도 본적이 없다.
산길에서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는 어떤 것이든 너그럽게 수용되고 포용된다. 그리고 재미있다. 자연이 모든 것을 감싸듯 사람의 마음도 자연을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 등산객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 적이 있다. 그는 절에 가든 교회를 가든 “무엇을 얻으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비우러 간다”고 하였다.
듣는 순간 머리에 폭탄을 맞은 것처럼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렇다. 지금까지 세상을 살면서 직장, 가정, 교회나 모임에서 항상 무엇인가 얻으려는 생각으로 가득 하지 않았는가? 위로 받고, 인정을 받고, 복을 받고, 영생을 받고, 무엇이든 한 수 배우려는 생각으로 가득하지 않았는가? 실천의 대소문제가 아니라 ‘비운다’는 생각을 마음에 지닌 사람이 있음을 보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 마음과 눈으로 자연을 다시 보니 자연 자체가 스스로 비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떨어지는 나뭇잎은 내년 봄 새로운 나뭇잎에 자리를 비워주는 아름다운 양보로 비쳤다. 자리 양보뿐 아니라 자신을 완전히 썩혀서 새 생명의 탄생에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희생되어야 50배, 100배의 새로운 밀알이 탄생하듯이 철저히 희생되지 않으면 새 생명의 잉태가 없다는 자연의 섭리와 법칙을 몸소 느껴보는 순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삶도 자연과 동일하다. 선조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고 또 그 희생 위에 후세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 밀알이 희생된 밀알을 기억 않고, 수천 리를 회귀하여 알을 낳고 죽음을 맞이한 연어를 그 새끼들이 기억하지 않듯이 인간도 훗날에는 선조를 잊는 것이 지극히 정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자연의 이치를 잊고 이것이 두려워 여기에 집착하다 보면 욕심내고, 화내고, 억지를 부리다 더 큰 것을 잃는 경우도 생긴다. 비운다는 것은 또 다른 채움이 된다는 자연의 이치 앞에 겸손 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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