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멀쩡해도 속으로 골병든 한국 기업들의 약골 체질을 보여주는 숫자가 또 하나 나왔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1천501개 비금융 상장사 중 부채비율 최상위 300개사의 평균 부채비율은 올해 6월 말을 기준으로 279.2%로 1년 전보다 35.7%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4년 전인 지난 2009년 6월 말의 259.3%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이들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차상위 300개사의 평균 부채비율도 올해 6월 말 127.4%로 4년 전의 129.0%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모두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음을 보여주는 숫자다. 부채비율은 총부채를 자본 총계로 나눈값이다. 비율이 높으면 가지고 있는 돈에 비해 갚아야 할 빚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자보상비율로 잰 기업들의 건전성은 특히 더 나빠졌다. 1천501개 비금융 상장사 중 상위 5개사인 삼성전자·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기아자동차·LG화학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의 이자보상비율은 2009년 상반기의 265.1%에서 올해 245%로 추락했다. 이자보상비율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이다.
따라서 극소수 기업을 빼면 이자를 걱정 없이 낼 수 있는 맷집이 전반적으로 크게 약해진 셈이다. 이뿐만 아니다. 돈을 벌어도 이자도 제대로 못내는 이자보상비율 100% 이하의 기업 비중은 올해 상반기 37.9%까지 늘었다. 2010년 상반기의 32%보다 6%포인트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우리는 기업들의 무분별한 사업확장과 마구 당겨 쓴 빚이 남긴 상처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 겪은 두 차례의 악몽이다.
따라서 거액의 부채와 이자 비용에 신음하는 기업들의 현주소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할 수 없다. 노골화된 엔저 태풍과 시기만 남겨 놓은 미국의 출구전략이 몰고 올 금리 상승은 우리 기업들을 더 벼랑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기업이 진 빚은 스스로 해결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빚에 치여 안팎으로 골골대는 기업 현실을 강 건너 불 구경으로만 돌려놓기엔 밖에서 몰려 올 먹구름들이 너무 검고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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