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28일 독일 드레스덴 공대에서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을 밝혔다. 북한 당국에 인도적(人道的) 문제 해결, 민생(民生) 인프라 구축, 동질성 회복 등 3대 제안을 했다. 우리는 사의를 표한다.
이 3대 제안에는 박 대통령의 고민스러운 흔적이 담겨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통일결과의 대박보다 통일과정의 준비를 강조함으로써 흡수통일의 오해를 불식시켰다. 민간급 교류의 확대를 제시함으로써 5.24조치의 유연성을 보여 주었다.
비핵화를 전제조건화하지 않음으로써 남북 당사자 해결의 폭을 넓혔다고 본다. 거듭 만강의 사의를 표한다.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에는 북한 붕괴론이 없다. 화해와 협력 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어 김대중 정부의 통일 방식과 비슷하다. 보수·진보의 흐름이 만나는 초당적 접근을 느낄 수 있다.
내치(內治)에서도 초당적 협력이 본격화 돼야 한다. 성장과 일자리를 확대하면서 정의와 복지의 결핍을 해소하는 과정에 여야가 따로일 순 없다.
하지만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에 500발의 포격을 가한 북한이 1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무차별적인 '막말 폭탄'을 투하했다. 청와대는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겠다며 '무대응 전략'으로 응수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재외공관장 만찬사에서 북한의 막말 공세를 무시한 채 "통일 독일의 발전상을 보면서 한반도 통일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이성적 인신공격에 맞대응하기보다는 차분하게 통일 구상을 준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에 앞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통일 구상에 담긴 3대 제안을 사실상 거부했다고 한다. 노동신문은 "박 대통령이 오물처럼 쏟아낸 망발과 추한 행실은 혐오감과 환멸감부터 자아낸다"고 막말을 쏟아냈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우리 국가원수의 외교 활동에 대해 시정잡배도 입에 담기 꺼릴 표현을 사용하는 비상식적 행태를 거듭하고 있다"며 "남북관계 개선을 언급한 북한의 소위 '중대제안'이 빈껍데기가 아니었는지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바깥세계가 갈수록 북한을 정확히 알기 힘들게 되는 것에 비례해 북한 역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다. 북한은 냉전 시절엔 소련과 중국을 필두로 한 공산권 세계가 북한의 친구였고, 냉전이 무너지자 미국과 적대 관계에 놓인 중동·남미 일부 국가를 벗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런 나라들도 최근에는 북한과 정반대되는 길을 가기 시작했다. 북한과 핵·미사일 개발을 함께 도모했던 이란이 대표적인 경우다. 중국도 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본다. 이제 북한의 친구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란은 작년 여름 로하니 대통령 취임 이후 180도 달라졌다. 로하니 대통령은 '핵무기 포기'를 선언했고, 현재 미국·유럽 주요 국가들과 비핵화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란을 꽁꽁 옭아맸던 경제 제재도 상당 정도 풀렸다. 그러면서 이란은 지금 경제 부흥의 기대에 한껏 들떠 있다.
얼마전 미국 언론은 '죽음의 땅'에서 'IT 허브'로 탈바꿈하고 있는 아프리카 르완다를 대서특필 했다. 20년 전만 해도 르완다는 종족 분쟁으로 80만여명이 숨졌던 절망의 나라였다.
그런 르완다가 최근 최근 4년간 연평균 8% 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종족 간 화해를 이끌어내고 IT 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인 정치 리더십이 빚어낸 기적이라고 본다.
북한은 이 나라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대한민국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언제든 북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이런 호기(好機)를 스스로 날려버렸다.
이제 북한의 위협에 놀라 북을 달래야겠다고 생각할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북한은 변해야 한다. 그래야 잘 살 수 있다.
정부는 고위급회담을 해야 한다. 오랫동안 대북포용과 대북강경의 경험이 풍부한 통일부 중심의 장관급회담을 해야 한다. 또 우리 측의 적십자 실무회담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인간으로서 천륜(天倫)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은 하루속히 우리 영공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북한이 항상 우리의 예측을 뛰어넘는 도발을 감행해 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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