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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나라를 나라답게 다스리는 用人術(19) 2018년01월22일(Mon)
이정랑 언론인
 한신(韓信)과 비슷한 최후를 본 사람으로 한나라의 곽광(藿光)과 주아부(周亞夫)가 있다. 곽광은 한무제 때 흉노를 물리친 영웅 곽거병(藿去病)의 동생이다. 곽광은 한무제를 따라 20여 년간 조심하면서 아무런 과실을 일으키지 않았다. 한무제가 임종시 좌중의 뭇 대신들 가운데서 곽광을 뽑아 어린 황제를 보좌하는 중임을 맡겼다. 한무제가 곽광에게 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이란 요직을 내려 8세밖에 안 되는 어린 황제 한소제(漢昭帝)를 보필케 했던 것이다.

곽광은 한무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어린 황제를 10여 년이나 보필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고 안정된 나라로 만들었다. 그러자 주변국들도 한나라를 공경하였다. 소제가 붕어(崩御)하자 곽광은 뭇 대신들과 더불어 창읍왕(昌邑王)유하(劉賀)를 황제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유하는 현명한 군주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곽광은, 국사를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진 유하를 처치해야 한나라의 사직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는 과감히 유하를 폐위시켰다. 그리고 대신 유순(劉詢)을 한선제(漢宣帝)로 즉위시켰다.

곽광의 이 처사는 조정 대신들의 동의를 받았다. 《한서(漢書)》에서는 곽광의 이 일에 대하여 ‘사직을 올바로 잡고 국가를 안정시켰다’고 평했다. 그런데 이 거사가 한선제의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다. 어느 날 한선제가 조상신위에 제를 올릴 때 곽광도 함께 있었다. 이때 한선제는 ‘뒷등에 침 바늘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한신과 비교할 때 곽광은 정말 행운아가 아닐 수 없었다. 곽광은 황제를 보필한지 20년 만에 자신의 수명을 다했다. 한선제는 그가 죽자 제왕과 비슷한 장례식을 융숭하게 치러주었다. 그러나 곽광은 그때 이미 자손들에게 재앙의 불씨를 심어주었다. 한선제는 비록 곽광에게 후한 장례식을 치러 주었지만 3년도 안 되어 구실을 잡아 곽광의 온 가족을 멸족시켰다. 그때 곽광 가족과 함께 연루되어 목숨을 잃은 사람이 수천 명에 달할 정도였다. 민간에서는 곽광의 후손이 멸족 당하게 된 것은 기실 한선제가 ‘뒷등에 침 바늘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을 때부터라고 전하고 있다.

주아부(周亞夫)는 한나라의 개국대신인 주발(周勃)의 아들이다. 주발이 죽자 맏아들 주승지(周勝之)가 직위를 이어받았다. 그런데 주승지는 죄를 지어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때 한문제(漢文帝)가 주발의 다른 아들 중 현명하고 재능 있는 자에게 직위를 물리라는 성지(聖旨)를 내렸다. 그러자 뭇 대신들이 모두 주아부를 추천하였다. 이렇게 주아부는 직위를 계승하게 되었고 조후(條侯)로 봉해졌다.

주아부는 군사를 아주 엄하게 다스렸다. 그의 군사는 군기가 엄하고 전투력이 강했다. 한문제는 그의 치군(治軍) 능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한문제는 붕어 전에 앞으로 즉위할 한경제(漢景帝)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를 했다.

“앞으로 나라가 위태로울 때 꼭 주아부를 원수(元帥)로 삼아야 하느니라.”

한경제가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오왕(吳王) 유비(劉&#28638;)를 위수로 한7개국이 반란을 일으켰다. 급기야 들이닥친 반란에 한나라 조정은 매우 위태롭게 되었다. 한경제는 선제의 당부대로 과감히 주아부에게 군권을 주어 난을 평정케 하였다. 주아부는 나라가 위태로울 때 어려운 중임을 맡고 반란군 토벌에 나섰다. 치열한 남정북벌을 통해 마침내 7국연합군을 격파하고 유씨 한조의 대통을 지켜 대공을 세운 주아부는 승상으로 발탁되었다.

한경제가 태자 유율(劉栗)을 폐위하려고 결심했지만 주아부가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황제의 뜻을 어길 수 없어 유율은 끝내 폐위당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한경제는 자신의 뜻을 거스른 주아부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이틈을 타서 7국연합군을 격파시킬 때 주아부와 갈등이 있었던 양효왕(梁孝王)이 자주 한경제에게 주아부의 험담을 했다.

한편 주아부는 한고조 유방이 유언한 ‘유씨가 아닌 사람을 절대로 왕으로 봉해서는 안 된다’라는 유언을 고수하고자 했다. 그런데 경제가 황후의 오빠인 왕신(王信)을 후작에 봉하자 주아부는 한나라의 사직을 지키기 위하여 황제의 이런 행동을 격렬히 반대하였다. 그 결과 그는 두태후와 한경제의 노여움을 동시에 사게 되었다. 한경제는 만약 자기가 붕어하게 되면 주아부가 자기 아들을 위해 충신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기회를 보아 주아부에게 죄명을 덮어씌우고 그를 투옥시켰다. 감옥에 갇힌 주아부는 억울한 나머지 닷새 간 단식을 했고 마지막엔 화병이 도져 피를 토하며 죽었다.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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