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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
나라를 나라답게 다스리는 用人術
2018년05월02일(Wed)
이정랑 언론인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고 적시에 행하면 결코 위험하지 않다.
  동진(東晋)의 사안(謝安)의 처지는 주아부(周亞夫)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침착하고 예지가 넘치는 사안은 내색을 하지 않고 간신 환온(桓溫)의 모반을 좌절시켜 대공을 세웠다. 환온이 죽은 뒤 사안이 정권을 잡게 되었다. 그가 황제를 보좌해 집정하는 기간 동안 동진의 경제는 부유하게 되었고 조정 내부는 평화롭고 안정되었다.
  진효무제(晋孝武帝) 태원(太元) 8년(1383년),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은 백만대군을 인솔하고 남하하여 동진을 공격하였다. 이때 사안은 10만 대군을 지휘하여 비수에서 부견의 군사를 대파하였다. 이 비수전에서 대패한 부견의 군대는 다시 싸울 마음을 잃고 후퇴하였다. 이것이 역사상 적은 병력으로 많은 병력을 이긴 그 유명한 비수지전(&#28125;水之戰)이었다. 사안은 적들의 후퇴를 놓치지 않고 추격하여 서·대·청·사·예·양 등 6주를 수복하였고, 동진은 이때부터 전성기에 들어섰다.
  그러나 사안의 위업과 전공은 진효무제와 그의 이복동생 회계왕(會稽王) 사마도자(司馬道子)의 의심과 질투를 야기 시켰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사안의 사위 왕국보(王國寶)는 인품이 나빠 사안의 미움을 사고 있었다. 그의 사위는 이것이 못마땅하여 끝까지 그에게 원한을 품었다. 결국 사안을 대하는 마음이 일치했던 사마도자와 왕국보는 서로 결탁하게 되었고 결국 효무제에게 사안을 모함하였다.
  효무제는 그것이 모함인줄 알면서도 이때가 좋은 기회라고 여겨 사안으로 하여금 건릉(巾陵)을 지키게 하였다. 이에 우울증에 걸린 사안은 얼마 뒤 병을 얻어 세상과 등지고 말았다.
  수문제(隋文帝) 때의 공신 고영(高潁)의 운세는 사안(謝安)보다 좋지 못했다. 수문제 양견(楊堅)은 북주(北周)의 신하로 있을 때부터 왕위를 찬탈하여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함께 북주의 대신으로 있던 고영이 총명하고 예지가 넘치는 유능한 사람임을 알고 있던 양견은 그를 자기 주변으로 끌어들였다. 고영은 멸족의 위험을 무릅쓰고 양견을 도왔다. 고영의 도움을 받은 양견은 끝내 북주왕에게 압력을 가해 왕위를 내놓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북주를 뒤엎고 수나라를 세운 양견은 고영의 도움으로 천하를 통일하는 대업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후 고영은 양견의 수하에서 20년 간 승상으로 있었다.
  고영은 수나라를 위하여 피 흘려 싸웠고, 그 대공(大功)은 혁혁하였다. 그리고 그는 수나라의 사직을 지키는 데 전력투구하며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는 그만 황후 독고(獨孤) 씨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황후는 이런 저런 트집을 잡아 고영의 흠집을 들춰냈다. 결국에는 수문제도 황후의 말을 듣게 되었고 마침내 그를 서민으로 삭직(削職)시켰다.
  당조(唐朝)의 일대명장 곽자의(郭子儀)의 처우도 별반 나은 편은 아니었다. 당나라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말기에 이르러 당현종(唐玄宗)이 주색에 빠지자 간신들이 득세하였고 변경에서는 전화(戰禍)가 그칠 새가 없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국가에 엄청난 재난과 타격을 안겨 준 8년간에 걸친 ‘안사의 난(安史之亂)’ 이 일어나게 되었다.
  변방대장인 안록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이 동도(東都)인 낙양(洛陽)과 서도(西都)인 장안(長安)을 함락시키자 당현종은 부랴부랴 사천의 성도(成道)로 피난을 떠났다. 그러자 태자 이형(李亨)이 즉위하였으니 그가 당숙종(唐肅宗)이다.
  당숙종은 이광필(李光弼)과 곽자의에게 중임을 맡겨 안사의 난을 평정토록 하였다. 곽자의는 나라가 풍전등화에 처한 위급한 시기에 중임을 떠맡고 몇 년 간을 난군과 피 흘리며 싸웠다. 안사의 난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곽자의의 공훈은 그야말로 혁혁하였다. 그러나 당덕종(唐德宗)은 즉위한 뒤 곽자의의 명망이 너무 높고 권세가 막강함을 알자 이를 꺼리게 되었다. 황제의 견제를 받은 곽자의는 머지않아 자신이 가진 모든 병권을 내놓아야 했다.
  이밖에도 제(齊)나라의 전단(田單)&#8901;당(唐)나라 덕종(德宗)때의 이성(李晟) 등의 공신은 그 지략이 초인적이었으며, 그 충의는 초석과도 같았다. 그들은 국가의 흥망을 위해 자신의 안위를 고려하지 않고 사선(死線)에서 싸운 맹장들이었다. 그러나 때를 잘못 만나거나 혹은 현명치 못한 군주를 만나, 모두 권력을 박탈당하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빼앗긴 불우한 인재들이었다. 이처럼 권력의 2인자는 늘 최고의 권력자에 의해 마련된 올가미에 걸려들어 엄청난 죄명을 뒤집어쓰고 축출되거나 또는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수 없이 보아온 것이다.
  단 하나 이들이 공을 세우고도 비참한 최후를 면하는 길! 그것은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고 행동하는 “물러남의 지혜”가 부족하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 사례들이다.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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