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08월22일 (Wed)   Home   탑뉴스   정치   자치행정   경제   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오피니언   지역뉴스   특집   사람들   

칼럼
사설
기자수첩
독자투고
특집
연재특집
기획취재
사람들
포토뉴스

회사소개
기사제보
게시판
광고문의
정기구독
E-mail문의
독자위원회
고충처리인
청소년보호정책

지역 날씨정보

뉴스 홈 > 칼럼

칼럼 사설 기자수첩 독자투고
<이정랑 칼럼>
나라를 나라답게 다스리는 用人術
2018년05월17일(Thu)
이정랑 언론인
 신하로서 종묘사직을 위하여 세운 대공이 천하에 널리 알려져 군주마저 그를 경외(敬畏)한다면 그는 조만간 군주의 의심을 사게 된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에 이르면 그 끝이 별로 좋지 못하다. 이러한 예는 역사상 부지기수(不知其數)다. 그 대표적인 사례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한신(韓信)의 예를 들어보자. 그가 젊었을 때 남의 두 다리 사이로 기어가는 굴욕을 이겨낸 것은 그에게 커다란 포부가 있어서였다. 훗날 그는 초패왕 항우(項羽)를 찾아갔지만 별로 탐탁히 여기질 않아 형식적인 대우만 받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몇 번이나 항우에게 계책을 건의 했지만 번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한신은 자신의 큰 뜻을 펴기 위하여 항우를 떠나 유방(劉邦)에게로 갔다.
  처음에는 유방도 그를 중시하지 않았다. 겨우 치속도위(治粟都尉)라는 자그마한 벼슬을 주었을 뿐이다. 훗날 소하(蕭何)가 강력하게 추천해서야 대장군(大將軍)이 될 수 있었다. 군사의 중임을 맡은 한신은 마치 물을 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역사에 길이 남길 불후의 업적을 세웠던 것이다. 그는 공개적으로 산길을 뚫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암암리에 진창(陳倉)을 넘어서 삼진(三秦)을 평정했으며, 또 배수진(背水陣)으로 조나라 군사를 대패시켰다. 나아가 피 몇 방울 흘리지 않고 연나라를 수복하였으며 기병(奇兵)을 풀어 삼제(三齊)를 점령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초군을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트려 대패시켰다. 이로써 초패왕 항우는 애희(愛姬)와 슬픈 이별을 해야 했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한신이 없었다면 유방이 통일대업을 이룰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유방에 대한 한신의 충성은 의심할 바가 없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대결할 때, 한신에게는 유방과 항우를 모두 멸망시킬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한신은 다른 왕국을 세우지 않고 일심전력으로 유방에게 충성하였다. 자신을 믿고 총애한 은혜를 갚는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황제가 된 유방의 생각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았다. 무공이 혁혁하고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한신이 조만간 모반할 것이라는 의심이 덜컥 들었다. 의심 때문에 두 발을 뻗고 잠을 잘 수 없었던 유방은 끝내 모반죄를 덮어씌워 한신을 제거해 버렸다.
  한신을 실제로 모살(謀殺)한 유방의 아내 여치(呂雉)는 평민의 아녀자로써 제왕의 위치에까지 오른, 중국역사상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그녀의 일생을 보면, 우연한 기회로 이룬 일이 절반 정도였고 나머지 절반은 그녀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앞의 반생에서는 유방의 아내가 되어 존귀한 황후가 되었으며 남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세력을 얻었다. 후반부 인생에서는 자신이 처한 유리한 위치를 이용하여 장기적인 안목에서 끊임없는 노력과 잔혹한 수단을 동원하는 수완과 능력을 발휘하여 대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척희(戚姬)는 여치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었지만 그것을 이용하지 못했고 줄곧 유방에게 애원만 하다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여치는 강약을 조절하여 주도면밀하게 위엄과 명망을 세우고 신하들을 복종시켰다. 사실 여치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녀의 성공비결은 남이 속아 넘어갈 정도로 능란한 기지와 잔인함에 있었다.
  중국의 봉건시대 궁전은 세상에서 가장 비이성적이고 비도덕적인 곳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조금만 인정을 베풀어도 정치투쟁에서 밀려나게 된다. 권력을 위해서는 물질이나 도덕, 혈육의 끈끈한 정도 아낌없이 버릴 수 있어야 했다. 모든 일에 대가를 지불하고 비인간적이어야 자신의 정권을 안정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궁궐에서의 정치투쟁 가운데 권세욕과 인성이 충돌하면 언제나 권세욕이 승리하고 인성이 패하였다. 권력투쟁에서 패한 사람의 땅에 떨어진 머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실패한 이유가 인정과 우유부단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후대 사람들은 한신의 죽음을 ‘토사구팽(兎死狗烹)’에 비유하여 그의 억울한 죽음을 위로했다. 하지만 한신에게도 천하의 주인이 될 기회가 있었다. 한신의 참모 괴통(&#33967;通)은 앞서 한신에게 그의 공적과 지도력은 항우와 유방에 못지않으니 그들과 천하를 삼분하여 다스릴 것을 조언했다. 그러나 한신은 괴통의 조언을 물리치고 유방을 도왔고, 결국 유방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한신은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괴통의 조언을 따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한신의 가솔들 또한 삼족을 멸하는 형을 받았다고 한다.
  ‘새가 떨어지면 양궁을 감추고 토끼를 잡은 후에는 사냥개를 삶아 먹듯이 적국이 사라지면 모사를 죽인다(飛鳥盡 良弓藏 狡兎死 走狗烹 敵國滅 謀臣亡)’는 저 춘추전국시대 유명한 정치, 전략가 범려(范&#34849;)란 사람의 예지叡智)와 혜안(慧眼)은 실로 세상 사람들에게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일깨워주는 놀라운 충고라 아니할 수 없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선견지명(先見之明)에 탄복할 뿐이다.

[관리자 기자]

돌아가기    리스트 보기   출력하기

‘황소개구리 소탕작전’ 눈길

이 슈
나주시, KTX나...

전남 나주시 KTX정차역인 나주역 일대가 지역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

신안 증도, 웰...

신안군(군수 박우량)은 증도 해양힐링스파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

대한민국 체험 ...

한층 시원하게 단장한 대한민국 대표 여름축제인 강진청자축제가 오...

무안군, 갯벌....

무안군(군수 김산)이 역점 추진하고 있는 관광자원 개발에 날개를 달...

우리나라 최초 ...

완도군은 여름철 해수욕장 개장을 앞두고 안전관리 점검 및 편의시설...

연재특집
대한민국 말산업 미래 이끌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