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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례문, 다 무너진 후에 철통경비 |
2008년02월13일(Wed) |
| 이승배<논설위원> |
국보 1호 숭례문이 한 노인의 개인적인 불만으로 저지른 방화에 사라져 버렸다. 숭례문은 610년의 장구한 역사 동안 서울의 한복판에서 임진왜란과 6.25 한국전쟁을 말 없이 지켜보던 우리민족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어이없는 방화사고로 순식간에 불에 타 없어지고 새까만 숯만 남은 숭례문 앞에는 슬퍼할 틈도 없이 관리당국과 경비업체간 책임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확한 사고 조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복원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 사람의 테러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우리 사회의 안전의식에 대한 고민부터 해봐야 한다.
특히나 방화사건은 더더욱 그랬다. 지난 대구지하철 화재참사에서도 한 사람의 불만이 큰 재앙을 불러왔다. 사건 이후에 지하철 내장재는 모두 바꿨지만, ‘설마’하는 우리사회의 안전 불감증은 결국 바뀌지 않은 것이 숭례문 방화에서 드러났다. 우리가 국보 1호라며 서울 시내 한복판에 서 있던 숭례문이 홧김에 지른 불로 순식간에 사라질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숭례문은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방화범의 생각은 간단했다. 경비가 허술해서 숭례문을 택했다고 했다. 노인이 보기에도 숭례문은 경비가 취약했다. 평일에는 경비 3명이, 휴일에는 한명이 지켰고 밤에는 감시카메라만 있었다. 경비가 이처럼 허술하니, 사고는 언제든지 예견되어 있었다. 게다가 잦은 묻지마 방화 사건을 보면,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아무데나 불을 질러버리겠다는 사람도 한 두명이 아닌 것 같다.
충격적인 것은 서울역 주변 노숙자들의 말에 따르면, 숭례문 문루엔 5~6명의 노숙자들이 지내고 있고, 평소에도 모여 앉아 소주를 마시거나 라면을 끓여먹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심지어 추우면 깡통에 불을 피워놓고 잠을 자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경비업체는 낮에는 이들을 끌어내기도 했지만, 밤에는 노숙자라고 말하면 눈감아 주거나, 경보가 울려도 현장에 오지 않는 일도 빈번했다는 것이었다. 비단 숭례문 뿐만이 아닐 것이다. 곳곳에서 돌봐주는 손길 없이 방치되어 있는 문화재 모두가 표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를 더욱 창피하게 만드는 건 이웃 일본에서는 문화재 시설별로 일 년에 한 번씩 화재대비 실전훈련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전 직원이 동원돼 화재발생 시 훈련 요령을 숙지하고, 소화시설을 점검하는 등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숭례문은 명색이 국보 1호라며 외국관광객들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는 자랑거리였는데도, 조명시설만 잔뜩 해놨을 뿐, 그 흔한 스프링클러 하나 없었고, 노숙자들이 제집처럼 드나드는 곳이었으니, 이제까지 사고가 한번 나지 않았던 것도 감사할 일이다.
해외언론까지 특종으로 보도하는 기막힌 참사현장에 이제 와서 펜스로 둘러치고 경비원 수십명을 세워봤자 무슨 소용인가? 사고가 터지면 그제서야 대책을 찾으며 분주히 움직이고, 서로 책임 떠넘기면서 넘어가려는 세태가 반복되는 한 제2의 숭례문 사태는 또 발생할 것이다.
며칠 지나면 언론과 국민의 관심에서 잊혀져 가겠지만, 이번 사고가 보여준 우리 사회의 흐트러진 기강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재난방지 시스템과 매뉴얼이 아무리 잘 되어 있다 하더라도 실행 당국과 사회 전체 기강이 흐트러져 있으면, 제대로 효과를 볼 수가 없다.
또한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의사소통의 중요성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번 사고를 단순히 사회에 불만이 많은 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거나 관리당국의 허술함에 떠넘겨선 곤란하다. 구성원간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되는 열린사회를 복원함으로써, 사회 불만을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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