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2, 23일 개성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철도협력분과위원회 회의를 무기한 연기했다. 순항하던 남북 관계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달 개최를 목표로 한국과 미국이 추진해 온 6자 수석대표 회담도 다음달 이후로 늦춰지는 분위기다. 작년 중반 이후 활발하게 진전된 6자 회담과 남북관계 모두 동결 조짐을 보이는 심상찮은 상황이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모호한 대북정책 기조로부터 직접적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당선인과 인수위는 10·4 남북 정상선언을 존중한다면서도 대규모 남북경협 사업은 북핵 문제 해결과 연계해 속도조절을 하겠다고 했다. 북한으로선 여러 남북 회담의 실효성을 확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통일부 폐지안도 있다. 통일부 폐지안은 정부조직 개편안의 국회 심의에서 협상의 ‘빅딜 카드’가 되리란 소문이 돈다.
그러나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23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통일부 폐지 방침과 관련 “통일부 폐지가 현실화 되면 북한은 남한과의 대화를 접어두고 미국과의 대화에 매달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옳은 말이다.
통일부를 없애고 외교통일부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발표는 평화통일(平和統一)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망각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이는 국가·민족의 정체성보다 강대국 중심 외교를 앞세우는 천박한 실용주의의 산물이라 하겠다. 인수위의 안(案)은 기존 통일부 기능을 경제 교류와 남북대화 중심으로 크게 줄이되 이마저 외교정책의 하위 범주로 격하시켰다는 것으로 요약되기 때문이다.
남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총괄하는 부서의 필요성을 아예 인정하지 않음으로서 정부 조직에서부터 평화통일이라는 가치를 실종시킨 거이라고 본다. 그런데 인수위는 “통일정책을 보다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기가 막힐 일이다.
헌법은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제4조),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제66조3항)고 돼 있다.
이런 헌법 정신에 따라 1969년에 만들어진 통일부는 ‘통일 및 남북 교류협력에 관한 정책의 수립·총괄과 남북대화, 통일교육·홍보 등의 업무’를 해 왔다. 군사 정권을 포함한 모든 정부가 통일부를 유지한 것은 분단국 국정에서 꼭 필요한 정치적 상징성을 유지·강화하고 평화통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무위원을 장으로 하는 전담부서가 필수적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1990년대 말부터 남북관계가 부쩍 진전되면서 통일과 관련된 실질적 업무가 크게 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통일부를 오히려 확대 재편해야 할 상황이다.
인수위는 기존 정책과의 연속성을 애써 강조했지만, 통일부 폐지와 분산배치는 ‘햇볕 정책의 폐기’를 암시한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벌어질 사태를 짐작할 수 있다.
친북정책은 친미정책으로 전환될 것이며, 북한 문제는 한·미·일 삼각 공조에 편입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모든 대북사업에서 ‘우리 민족끼리’라는 레이블을 떼고 프로젝트형 사업 명칭을 붙일 것이다.
이를테면 역사적 의미로 한껏 부풀려진 평화협력정책들은 그냥 ‘백두산관광사업’ ‘해주항만개발사업’ ‘철도개설사업’으로 격하되고 민족화해와 공존이라는 ‘어설픈 휴머니즘’보다 실리적 손익계산이 앞서지 않을까 싶다.
대북 실용주의를 내세워 인수위는 친북세력과 종북(從北)담론을 냉정하게 정리하고 싶은지 모른다.
사실 지난 10년간 진보진영이 통일담론을 세력 확대의 수단으로 독점했고 대북정책들도 이념적 경계를 허무는 메뉴로 채웠던 것이다. 따라서 보수세력의 오늘의 역풍(逆風)을 맞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역풍이 10년 성과를 부정하는 ‘역코스’가 아니기를 바란다. 친미적 국제외교만으로는 풀 수 없는 고유한 민족적 쟁점을 해결하는 데에 그래도 ‘선샤인 폴리시’가 유용했음을 미국 정가에서도 알고 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평양의 문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고, 남북 합작사업을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냉전체제의 편향적 시각을 수정하고 조금은 어른스럽고 총체적인 시각을 갖추게 한 것은 아무래도 햇볕정책의 공이다. 국회는 반드시 통일부를 살려야 한다. 인수위의 ‘대북 실용주의’에 대한 종합적 청사진을 내도록 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이제 마지막으로 입법부(立法部) 국회만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여야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자세로 국민에게 생산적인 새 정치모델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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