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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속이 능사가 아니라 제한을 풀어줘야 |
2007년12월26일(Wed) |
| 이승배<논설위원> |
특정구간에서 평균속도를 측정해 자동차 과속을 단속하는 ‘구간단속’이 26일부터 영동고속도로에서 처음 시작됐다. 기존의 과속감시 카메라 설치지점을 통과하는 속도를 측정하는 방식에서 한 단계 향상된 방식이라고 한다. 어쨌든 교통사고 사망자 발생률이 OECD가입 국가 중 1위라는 오명을 갖고 있었으니, 이번 구간단속이 효과를 발휘할지 기대된다.
하지만, 고속도로에서의 과속과 교통사고 발생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이견이 치열한 상황이다. 대체적으로 운전자가 과속할 경우, 교통사고발생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자동차개발 기술이 향상됐고 신차 성능이 좋아지면서 고속안정성이 뛰어난 차량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정 속도 이상으로 달린다고 해서 교통사고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식의 단순한 사고는 곤란하다.
예를 들면 현재 경부고속도로의 경우 제한속도가 시속 100km에 묶여 있지만, 실제 주행하는 차량 대부분은 120km정도이며, 이 속도로 커다란 교통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시속 140km이상으로 달리는 차량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고속도로 주행의 관건은 ‘안전하고 빠른’것이겠지만, 운전자가 체감하는 시속 100km의 제한은 ‘안전하지만 느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규정속도를 지키겠다며 주행차로인 2차선을 시속 100km로 달릴 경우, 전체적인 교통흐름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더러 발생한다.
이처럼 고속도로에서 제한속도를 넘어 과속으로 달리는 것은 급한 일이 있어서 빨리 가려고 하기 때문이 아니라 성능 좋은 차량의 고속 안정성이 좋아진 것과 천천히 달리는데서 오는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으로 보인다.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은 구간별로 도로 상황에 따라 전자식 전광판을 통해 제한 속도를 조절하고, 일부는 속도제한을 풀어 운전자들의 달리고 싶은 욕구를 해소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교통사고 발생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 조사결과 밝혀졌다. 추월차선과 주행차선을 명확히 구분하는 독일인들의 높은 자동차 의식도 한몫 했지만, 국민의 달리고 싶은 욕구를 합리적으로 해소해 주는 독일정부 정책이 선진 교통문화를 만드는 바탕이 됐다고 본다.
IT강국인 우리나라에서도 고속도로에 구간별 전자식 전광판을 설치하고 도로공사 상황실에서 관리하는 방법으로 기상 여건과 도로사정이 좋은 곳은 제한속도를 좀 높이고, 날씨가 안 좋거나 차량이 많아 위험요소가 있는 구간에는 제한속도를 대폭 낮추는 등의 방법으로 유동적인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 이후에 단속을 철저히 해서 규정 위반자에게 높은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새로 도입된 구간단속 제도는 그 성과가 나오기 전부터 볼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현재는 영동고속도로 7.4km구간만 시행하고 있지만, 고속도로 전 영역으로 확대될 경우, 일부 운전자들이 과속은 하되, 휴게소나 갓길에서 쉬어 감으로써 단속을 피하겠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를 보건데, 근본적으로 국가 정책이 ‘못하게’하는 방향이 아닌, ‘가능하면 할 수 있게’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옳다. 사회공동체에 해가 되지 않게 하는 장치만 확보된다면, 국민의 욕구를 최대한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정부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민들 위에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며 통치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수 십년 째 같은 잣대를 가지고 이동식 카메라를 몰래카메라 찍듯 숨어서 단속하던 시대는 보내야 한다. 구간단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에 적절한 교통 정책들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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