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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소파 선생의 시세계 |
2007년10월22일(Mon) |
| 이준구<주필, 시인> |
46년이란 긴 연륜을 가진 호남시조문학회가 그동안 갈고 닦아놓은 시조를 아름다운 시서화로 만들어 10월 17일부터 28일까지 12일간 전철 남광주역 구내 전시공간에서 전시회를 갖는다는 소식이다. 고무적이다. 그것은 우리 민족 전통시를 간직하고 가꾸어 가야 한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중견 시인 가운데 96세인 최고 원로(元老) 시인 정소파(鄭韶坡) 선생이 건재,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니 우리는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먼저 만수무강을 빌고 그의 시세계(詩世界)를 알아 보기로 한다. 다시 말해 우리 민족시 시조의 향기를 문을 열어 광주시민을 향해 풍기게 하려는 것이다.
정소파 선생은 본명이 현민(顯珉)이다. 195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설매사(雪梅詞)’가 당선됐고, 같은 해 제1회 시조백일장에서 장원,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는 광주학생독립운동에 가담했다. 그리고 교단생활을 했다. 이고장 빛고을 광주의 시조 단체를 주도하는 등 지금도 노익장해 창작열이 왕성하다. 이제 그의 시적(詩的) 사상을 파악하기 위해 다음에 시를 들어 보기로 하자.
어느녘 못다 버린
그리움 있길래로-
강파른 등걸 마다
손짓하며 짓는 웃음
못 듣는
소리 속으로
마음 짐작 하느니라.
바위·돌 틈사구니
뿌린 곧게 못 뻗어도-
매운 듯 붉은 마음
눈을 이고 피는 꽃잎
향맑음
내음새 풍김
그를 반겨 사느니라.
꽃샘 바람 앞에
남 먼저 피는 자랑!
벌·나비 허튼 수작
꺼리는 높은 뜻을…
우러러
천년을 두고
따름 직도 하더니라.
<설매사(雪梅詞) 全文>
이는 메타포가 있다. 단순한 매화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혹독 무자비한 저 포악한 일제(日帝) 앞에 항거하며 싸웠던 대쪽처럼 굳센 의인(義人)과 열사의 송죽(松竹)같은 지절에 비유 받을 청절과 그 기개를 노래한 것이다.
강압의 총검에 눌려 죽은 숱한 변절인사들이 있는가 하면 서슬 푸른 칼날 앞에 모로 서서 항거한 열사의 충절이 있다. 알게 모르게 저 매화의 고절을 배우며 어려운 고비를 인고(忍苦)로써 겪어 왔다. 따라서 그는 자연을 소재로 한 섬세한 이미지와 내면의 정서를 연결하는 대가 다운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다음에 한 편 더 들어 보기로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향 광주에 산다는 긍지를 가지고 전통문학을 빛내고자하는 의욕의 불길이 식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담묵 배어 번진 산영(山影)
누운 소등 휘움한 골
성긴 소나무들
늙어 듬성 성긴 머리
새 비춘
달빛을 받아
먼 하늘이 어린다.
찬달은 둥글어도
호젓한 변방이라
기러기 소리 죽여
삼가 넘는 강둑인데
연옥빛
포름한 추명(秋明)
하늘 밖에 멀구나!
한줄기 그림자가
잡힐 듯 아습한 데
흰 달빛 한밤이면
강물도 출렁이고
오마던
그 사람 마저
끊긴 소식 아득해라.
<새안도(塞雁圖)>
이 작품의 모티프(motif)는 분단 조국 겨레의 통고와 날로 그리는 모정의 극치를 저 넘나드는 기러기를 상징으로 분계선을 국경의 변방으로 상정, 여위어 가는 산하(山河)의 한고(恨苦)를 자연을 오브재로 형상화 해놓은 것이다.
첫째 수에서는 농담의 묵색으로 그 기법을 다한 동양화의 묵향 어린 한폭의 그림으로 여위어 가는 조국의 면모를 그리되 기다림에 지친 조국산하도 늙어가는 양 그 초췌한 모습의 편모를 묘사했고, 둘째 수에서는 휘영청 밝은 깊어가는 가을 달밤, 몰래 조심스레 그 적막강산의 강언덕을 오가는 기러기를 사무친 겨레의 고향과 친척이 그리워 꿈에라도 넘어 보는 분계선을 환상적으로 묘사했고, 셋째 수에서는 잡힐 듯 가까운 지척을 두고 못 가는 서글픈 국경 아닌 국경에서 고민하는 애달픈 심회는 매양 헛되어서 밤도 깊으면 그 밝은 달빛을 타고, 강물도 지쳐 출렁이며 소리치는 절체절명의 현실을 그렸다.
이 작품은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면 시대적 아픔, 현실적 난맥상을 그린 것이다. 앞의 작품의 주제는 ‘항일’이고 이 작품은 ‘애국’이라 하겠다. 시어구사는 함축성과 근접성, 청정성에 힘썼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런 시적 사상(詩的思想)은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인가? 공부자(孔夫子)의 인학(仁學)에서 나왔다고 본다. 부자(夫子)는 인(仁)의 내적 타당성을 욕인(欲仁)할 수 있는 인간 본성 속에서 확보함으로써 시(詩)의 본질 또한 인(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경(詩經)에서 시(詩)를 사무사(思無邪)한 무한보편적인 인(仁)의 세계로 본 것이다.
그럼 인(仁)은 무엇인가? 인(仁)은 사랑인 것이다. 사랑은 만생명의 원동력이 된다. 특히 시작(詩作) 과정은 사랑이 기본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따라서 정소파 선생의 시(詩)세계는 인학적 사상으로 사무사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여겨진다. 다시 말해 그의 시는 ‘인도적 사랑의 덩어리’다.
우리는 이런 소파 선생의 시세계를 연구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도의가 땅에 떨어져 시(詩)세계까지 문란하게 됐기 때문이다.
오늘의 시인 중에는 섹스(sex)를 마구 직설적으로 쓰는 사람도 있다. 무례하기 짝이 없다. 한심지사가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시인들은 시를 씀에 있어 ‘도의적 연구’에 심혈을 경주해 시도(詩道) 확립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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