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이다. 맹자(孟子) ‘이루(離婁)’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유래한 말이다. 역지즉개연은 처지나 경우를 바꾼다 해도 하는 것이 서로 같다는 말이다.
모든 타협에는 이 ‘역지사지’가 앞서야 그 결과를 이루어 낼 수 있다. 만약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자기주장을 관철하려 한다면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또한 일방적인 해결은 정당성을 훼손하고 훗날 반론의 불씨를 지피고 마는 타협이 되고 만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역지사지’라는 말을 자주 썼다. 서로 체제가 다른 국가형태를 이해해 회담의 성과를 극대화 하려는 심리적인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남과 북의 분단 반세기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북한의 현 상황을 십분 헤아려 합의점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도도 섞여 있었다.
그 결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4일 오후 8개항으로 구성된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2007남북정상선언)’에 서명했다.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남북정상의 ‘만남’이라는 상징적 의미로 물꼬를 텄다면 이번 두 정상 간의 합의는 구체적인 면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다. 당연히 두 번째가 첫 번째보다는 큰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데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남북정상 간의 합의선언문 내용을 놓고 각 정당과 사회 각계각층 그리고 주변 사대국들의 반응도 각각이다. 여권은 환영일색인 반면 한나라당은 이번 선언 내용이 헌법 정신에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벼르고 있다. 또한 서해북방한계선 NLL 문제를 강력히 따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NLL 문제는 결론이 난 게 없다. 다음달 남북 국방장관들의 회담에서 다루기로 했다니 기다려 봐야 할 터이고, 그렇다고 우리 군이 우리 영토에 대해 실속 없는 회담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미국은 ‘선 핵폐기, 후 종전선언’을 주장했다. 당연히 시각차이와 논란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반세기 역사의 남북 대치 상황을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구축했다는 큰 틀의 관점은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치 못할 것이다. 과거 72년 박정희 정권 때 외세의 간섭없이 자주적으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족대단결의 원칙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7.4 남북공동선언도 있었지만 극한 대치 상황은 지속됐고, 이후 군부정권들은 오히려 안보를 빌미 삼아 정권 유지로 이용하는 등 국민들을 호도하는 술책도 비일비재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대결국면에서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고 있다. 동족상잔 전쟁의 아픔으로 인한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고 있지만 하나하나 해결의 물꼬를 터 나가야 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러시아의 반응이 이채롭다. 남북이 통일되면 ‘아시아 호랑이’로 등극할 것이라는 러시아 내의 여론조사 결과다. 틀린 말은 아니다.
주변 사대국들은 우리 남북의 통일을 원치 않을 수도 있다. 남북이 강대국이 되가는 꼴을 가만 지켜만 보고 있을 열강들이 아니다. 온갖 시기 질투에 훼방까지 놓을 수 있다. 그야말로 ‘자주국방’이 절실하고 국력을 키우는데 온 힘을 다해야 한다. 특히 일본의 눈치가 심상치 않을 것이다. 과거의 침략 근성에 사로잡혀 남과 북의 판이 깨지기 만을 바라고 있는 속셈이 작용할 수도 있다. 중국 역시 우리 고구려 문화를 예속시키기 위한 동북공정에 차질이 올까 노심초사 할 수도 있다. 미국도 북한에 대한 주도권이 약해질까봐 편하게 앉아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비추어 볼 때 한반도의 번영은 당연지사다. 막강한 국력만이 자주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분열은 금물이다. 보수와 진보라는 말이 필요 없는 오직 한겨레라는 깃발아래 뭉쳐야 한다. 주변 사대국들의 눈치만 보는 나약함은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우리는 이번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십분 환영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공동번영을 위해서다. 여기서 ‘역지사지’를 다시 한번 이야기해보자. 만약 현 정권이 아닌 다른 당의 정권이 이번과 같은 정상회담 성과를 가져왔다 할지라도 찬반의 의견은 분명 존재한다. 대국민 설득에 똑같은 어려움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체제와 사상이 다른 사회의 통합을 이루는 데는 분명 득과 실이 있다. 대승적 차원에서의 득이 무엇이가를 염두하면 편하다. 경제와 국방이 월등한 우리나라가 포용으로써 평화와 번영을 이룩한다는 취지에 기초를 하고 남남 간의 갈등은 역지사지로써 후속 회담 결과를 기대해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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