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교육지표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 받았던 송기숙(78) 전 전남대 교수가 29일 35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고 부인 김영애(76·여)씨와 광주지법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엄혹한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학자적 양심을 굳건히 지켜왔던 백발의 노(老) 교수는 35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고도 무덤덤했다.
29일 오후 2시40분 광주지법 301호 형사대법정. 재판부가 1978년 유신체제 교육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교육지표 사건’에 연루된 혐의(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위반)로 기소된 피고인 8명에 대한 재심사건 심리를 시작했다.
사건번호 맨 앞 순서인 송기숙(78) 전 전남대 교수가 쓰고 있던 중절모를 벗고 법정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송 전 교수는 피고인석이 아닌 법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순간 당황한 법정 경비원이 송 교수를 제지하고 피고인석으로 안내했다.
송 전 교수는 인정신문에서 생년월일을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도 답변 대신 해맑은 웃음으로 대신했다.
재판부가 뭔가 이상하다는 눈치를 보이자 방청석에서 “치매증세”가 있다는 말이 나왔다.
송 전 교수의 웃음은 신군부의 무자비한 총칼 앞에서 당당했던 그 때의 웃음이 아니었다.
다른 피고인들이 송 전 교수의 생년월일과 주소지를 설명할 때에도 송 교수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런 송 전 교수를 부축하고 온 부인 김영애(76·여)씨가 안타까운 듯 방청석에서 남편의 모습을 지켜봤다.
이미 답이 나와 있는 재판이라 피고인 8명에 대한 인정신문과 최후 변론은 짧고 무미건조하게 마무리됐다.
변호인은 헌법재판소가 긴급조치9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만큼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검찰도 무죄를 구형했다. 단, 재판부는 35년 동안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온 피고인들에게 짧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광주지법 제12형사부 신현범 부장판사는 “바쁘신데 법정에 많이 출석해 주셔서 감사하다. 당시 긴급조치9호 사건에 대해 유죄 판결을 한 것이 부끄러울 정도다”고 사법부를 대신해 사과했다.
이어 재판부는 송 전 교수를 포함해 양희승 5·18구속부상자회 회장, 류연창 목사, 박형종 공인중개사, 이철우 목사, 안철씨, 류재도씨, 성내운씨 등 피고인 8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송 전 교수는 부인과 함께 법정을 나서며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잘 모르겠소”라며 알 듯 모를 듯 한 해맑은 웃음을 보였다.
사건 당시 조선대 2학년이었던 양희승 회장은 “당시 유신헌법을 반대한 것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 당연한 일이었다”며 “유신독재 반대 운동이 이제라도 정당한 평가를 받게 돼 다행이다”고 말했다.
교육지표 사건은 1978년 6월27일 당시 전남대 문리과대학 국문학과 송기숙 교수를 비롯한 11명의 교수들이 교육 민주화를 주장하는 ‘우리의 교육지표’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이를 지지해서 일어난 6월29일 학생들의 시위를 말한다.
성명서 발표 직후 교수 11명 전원이 당시 중앙정보부에 연행되고 전남대와 조선대 학생들이 29일 교수들의 석방과 민주화를 외치며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
이 사건으로 관련 교수들은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구속 또는 전원 해직됐으며 학생들 또한 30여 명이 구속되고 제적·정학을 당했다.
한편 지난 2월에도 교육지표 사건에 연루됐던 김경천 김천과학대 총장 등 11명이 재심사건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 받았다.
<강흥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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