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에 이은 원전 방사선 유출 공포는 일본 열도 주민들의 전체 생활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소식이다. 충격적이다. 그것은 주민들의 표정에 웃음기가 사라졌고, 대화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머리 속엔 방사능 오염과 강력한 여진에 대한 공포감만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대지진 7일째를 맞는 17일 다른 대도시에 비해 원전 폭발지대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수도 도쿄의 거리는 눈에 띄게 한산했다고 한다. 불필요한 외출을 하지 않으면서 되도록 옥내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일본이 지진(진도 9.0)과 쓰나미 등 자연재해에 이은 핵재앙 위기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과는 별개로 또 하나의 전쟁에 시달리고 있다. 엔고(高)의 전쟁이다.
도호쿠(東北)대지진 직후 시장의 예상과 달리 엔-달러 환율이 되레 하락하자 ‘재난의 역설’ 등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정부와 기업이 재난으로 인한 보험금과 복구비용 마련 등을 위해 해외에 투자해 놓은 엔화를 환수할 것이라는 전망에 단기적으로 엔화 가치가 올라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일 국민 사이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가깝다. 일본의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눠지겠다는 행렬에 종교 단체, 기업, 한류 스타는
물론 일반 국민까지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이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상(慘狀)을 보고 방관만 할 수 있겠는가. 보편적인 인류애로 보나 이웃 나라의 도리로 보나 당연한 일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1992년부터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 대사관 앞에서 20년째 계속해 오던 수요 집회를 지진과 쓰나미 희생자 추모 모임으로 대체했다.
TV를 통해 참상을 목격한 한 위안부 할머니는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일본인들에게 힘내라고 격려하고 싶다”고 했다. 과거사 사과에 인색한 일본 비판에 앞장서 왔던 단체들도 성금 모금에 나섰다.
범국민적 운동으로 번지고 있는 온정의 물결에 반일정서도 봄눈 녹듯 녹아버린 것 같다.
신석기(新石器)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2,000여년에 걸친 한일 교류 역사에서 일찍이 없던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가 경쟁적으로 문물(文物)을 전해 일본 고대 국가의 성립에 큰 영향을 끼치는 등 한일 교류 협력관계의 역사는 깊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35년 일제강점기의 악연으로 양국 국민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과거사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그 프레임이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다.
대지진을 일방적인 관점으로 해석한 유명 종교인이나 과거의 시각으로 본 네티즌들이 뭇매를 맞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일본을 우습게 여기던 한국인들은 이번 대지진과 쓰나미에 대처하는 일본인 모습을 보고 생각을 고쳐 먹고 있다. 침착하고 의연하게 행동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이는 인류의 정신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일본의 시민의식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 한국도 최악의 시대에 대비한 행동요령을 가다듬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경수로의 특성상 최악의 경우에도 체르노빌 형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희박하며, 스리마일 형에 그칠 것이라고 입을 모으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적잖은 방사능 피해를 부를 수 있는 까닭이다.
정부와 국민은 모두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자연 재해는 신(神)의 영역으로 그 영향을 인간이 가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리 적더라도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을 반드시 해야 한다. 원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는 방사성물질의 방출을 수반하며, 심한 경우 인명을 살상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이다.
정부는 원전은 그만 건설하고 조력발전소를 건설해야 한다. 조력이 청정 에너지인데다 발전출력의 정확한 장기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서해안은 조력발전소를 짓기에 천혜의 입지로 꼽힌다.
일본은 하루빨리 원전의 냉각계통 고장에 따른 원전위기를 해소해야 한다. 방사능 공포가 일본 전역에 번지고 있는 까닭이다.
우리는 지금 G20 공동 회원국으로서 일본과 머리를 맞댈 정도로 성장했다. 더 성숙한 협력적 파트너로 업그레이드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 당국은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친 일본 국민을 도울 파격적 발상의 지원책을 짜내기 위해 중지(衆智)를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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