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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남(1) |
2010년08월26일(Thu) |
| 안용호<논설위원, 전 광주시교육청 장학담당장학관> |
광화문이 복원되었다. 우리 모두가 기뻐하고 축하하였다. 그러나 광화문보다도 더 훌륭한 문화재를 지킨 문화재 지킴이가 있으니, 간송 전형필이다.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되고 1997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훈민정음’은 간송에 의해 지금까지 전해진다.
간송은 훈민정음을 손에 넣은 뒤 하도 기뻐서 눈물을 흘리다가는 웃었고, 웃다가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러면 간송을 문화재 지킴이로 인도한 사람은 누구일까? 오세창이다. 오세창을 만났기 때문에 그런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었다. 오세창은 오경석에게 영향을 받는다. 오경석은 그의 스승인 이상적에게 영향을 받고, 이상적은 스승인 추사 김정희에게 영향을 받는다. 부모와 스승으로 만나는 이들의 만남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문화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처음으로 가보자.
1884년 추사의 나이 만 58세, 추사는 제주도에 귀양 가 있는 몸으로 제자인 이상적으로부터 계복의 ‘만학집’과 운경의 ‘대운산방문고’를 선물 받는다. 절해고도에 갇힌 그를 양반들은 외면했으나 중인들은 달랐다. 특히 제자인 이상적은 남달랐다. ‘잘살 때나 궁할 때나 변함없는 그대의 정의’야말로 바로 ‘세한송백’ 의 절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라면서 ‘세한도’를 선물한다.
추사는 이상적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특히 정조 이후 청조의 문물이 적극 수입될 무렵 중국 문인들 사이에서 이름이 드높았던 추사가 든든
한 울타리로 작용했다. 퍽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이상적은 ‘해린서옥’을 짓고 서재겸 학당으로 오경석을 비롯한 미래의 역관을 키웠다. 이상적은 역관 교육만 시킨 것이 아니라 중국의 예술품을 보여 주면서 예술에 대한 식견을 높여주었다.
이런 이상적과 오경석의 만남은 새로운 예술세계를 창조한다. 오경석이 중국 골동서화를 모으고 금석학에 관심을 두면서 서화 수장가로 이름을 높이게 된 것은 스승 이상적의 영향이 크다 하겠다. 얼마나 아름다운 만남인가. 이들의 만남은 또 다른 것을 잉태한다.
오세창은 3.1독립선언의 한 사람으로 기억하지만 우리나라 서화 수장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컬렉터다. 그는 20세기 전방을 대표하는 언론인, 서화가, 전각가였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고서화 인명사전인 ‘근역서화징’을 출판한 일만 가지고도 위대함이 넘친다. 오세창에게 서화 수집은 애국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의 업적은 그의 부친 오경석이라는 언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부친으로부터 서화애호의 취미와 열정, 서화가로서의 재주, 금석학에 대한 관심, 무엇보다도 세상을 바꾸려는 개화지식인으로서의 각성과 의지가 핏줄을 타고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아버지는 중인이었던 의원 유대치,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와 더불어 3대 개화사상가로 꼽힌다.
오세창은 몽매한 국민들이 몇 푼 이익을 보려고 귀한 서책이며 도자기 옛 기물을 넘겨버린다고 개탄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사 모았다. 그는 대단한 선각자였다. 오세창에게서 전형필이 영향을 받고 문화재를 사 모아 오늘의 간송미술관이 있게 한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간송은 오세창에게 오세창은 오경석에게 오경석은 스승인 이상적에게 이상적은 스승인 추사 김정희에게 영향을 받아 우리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는데 일조했다. 이 얼마나 멋진 만남인가. 그들의 만남은 미술품을 아끼고 사랑하게 했고, 스스로 만족을 넘어 기록이 되고 향기가 되어 퍼져 나갔다. 그리고 역사가 되었다. 이들의 만남은 우리 근대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것이다.
이렇듯 만남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위대한 성인도 제자를 잘 만난 덕이다. 공자가 공자 10철이나 증자, 자사, 맹자가 없었다면 인을 펼치지 못했을 것이고, 석가모니가 아난존자가 없었다면 불교의 이론을 전파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선생님은 제자 복이 있어야 한다. 제자 복이 있는 팔자는 인품과 실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꼴을 잘 보아야 한다.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많이 주어야 한다. 제자에게 자기의 간도 빼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사제관계를 인도의 라즈니시는 ‘연인’의 관계에 비유하였다. 조선시대에 제자 복이 많았던 분은 면앙정 송순이다.
고경명, 기대승, 임제, 정철 등 기라성 같은 제자들이 송순의 과거 합격 60주년을 기념하는 회방식 때 80세가 넘는 스승을 자신들의 손가마에 태우고 면앙정을 내려왔다고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스승과 제자가 없다고 서로 탓하지 말고 참 스승이 되도록 노력하자. 멘토 만나기도 어렵지만 멘티 만나기도 쉽지 않다.[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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