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15일 65돌 광복절 경축사에서 “통일은 반드시 온다. 그날을 대비해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이 문제를 사회 각계에서 폭넓게 논의해 달라고 제안했다.
이 경축사는 경술 국치 100년에 맞는 광복절의 의미를 잘 살린 것이다. 그것은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평화공동체→경제공동체→민족공동체’로 발전시키자는 단계적 평화통일 구상이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제의는 당장 통일세를 신설하자는 것이 아니라, 필요성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 보자는 언질이다. 독일이 1990년 통일 후 지난 20년간 쏟아 부은 통일비용이 2조 유로(약 3000조 원)에 이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도 천문학적 통일비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경제력이나 인구비율 등 여러 조건에서 지금의 남북한은 통일 당시 동서독보다 훨씬 열악할 게 명약관화(明若觀火)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비무환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이 대통령이 강조한 ‘공정한 사회’는 보수 대중영합이라는 오해와 비난의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광복 65주년의 진정한 의미와 과제를 제대로 짚은 게 아닌가 싶다. 친히 ‘권력의 정치’에서 ‘삶의 정치’로의 전환을 언급했듯, 모든 역사적 사건의 진정한 교훈과 과제는 사회구성원의 실질적 권리 신장과 행복한 삶이 되어야 한다는 보편적 진실을 우리 한국사의 특수성에 처음으로 접목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질적 삶의 조건의 구체적 개선 없이 추상적 국권 회복의 기쁨만을 강조하는 것은 권력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국민의 삶에 대한 구체적 개선이 아니고서는 달리 정치권력이나 국가의 실질적 존재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다만 공정한 사회로 다가서는 방법론은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를 위한 행동방침으로 정부의 확고한 정책 방향과 함께 민간의 적극적 동참을 당부했다. 최근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친서민·상생의 기조와도 통하는 공정한 기회균등 사회는 시장참여자들의 인식 전환과 자발적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통일세 신설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새로운 세목을 만드는 것은 기존 세금의 세율을 올리는 것보다 통상 조세 저항이 더 크다. 목적세는 일방적으로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긴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물론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에 대비하기 위해서 통일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주장에는 북한이 붕괴하면 남한이 흡수통일을 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과연 그럴까? 북한은 붕괴하더라도 110만명의 북한군이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지 않을까 싶다. 설사 해체되더라도 그 엄청난 집단이 무기를 손에 쥔 채 존재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북한 주민이나 새로이 할거하는 북한 신지도층 인사들이 남한으로의 흡수통일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대남 의존 심리나 신뢰가 있을 때만 남한의 북한 상황 관리가 가능할 것이다. 이는 꾸준한 남북관계 개선과 화해협력이 누적돼야 가능하다.
지금처럼 남북 대결상태가 지속되고 북한 주민의 대남 적대의식이 고조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자기 체제가 붕괴되었다고 남한을 쳐다볼 리가 없다. 우리 대신 그들은 중국을 쳐다볼 것이다.
남북관계가 이처럼 극도로 경색된 상황에서 통일세를 거론하는 것이 옳은지도 따져봐야 한다. 그보다는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높이고, 남북협력기금을 합리적으로 쓰고 저축해 순리적으로 통일에 대비하는 노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지하경제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거나 부가가치세 법인세 소득세 세율을 점진적으로 조성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따라서 통일세 도입은 사회적 합의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2년6개월 동안 남북협력기금을 10%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통일세를 말하는 것은 현재를 책임지지 않으려 하면서 미래를 대비하자는 주장이다.
MB 정부는 국회에서 마련해준 남북협력기금을 제대로 써야 한다. 이것이 우선이다. 그 후 더 필요하면 남북협력기금을 크게 늘리든지 통일세를 논의하든지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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