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이 지난해 발주한 ‘하수슬러지 자원화 시설공사’의 입찰업체 심사에는 심의위원 12명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10명이 3개 입찰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뇌물을 거절한 심의위원은 2명에 불과했다. 국책사업의 수주업체를 선정할 때 심의위원을 따로 위촉해 심사를 맡기는 제도는 공무원의 부정을 막고 심사의 전문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마련됐으나 결과적으로 돈 주는 사람은 같고 돈 받는 사람만 바뀐 꼴이 됐다.
환경공단의 환경시설사업 입찰이 비리로 뒤범벅돼 있다. 2010년 5월부터 2011년 말까지 활동한 환경공단 설계분과 심의위원 50명 가운데 23명이 뇌물을 받았다. 돈을 받은 심의위원은 환경공단 임직원, 특허청 및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국립대 사립대 교수 등이다. 입찰에 참여한 7개 건설사는 예외 없이 심의위원에게 뇌물을 건넸다. 정부 공사의 뇌물 잔치에 민학관이 망라됐다.
입찰 업체들은 심의위원 후보 50명의 신상을 파악한 후 학연 지연 등이 닿는 간부 직원을 ‘일대일 담당자’로 지정하고 수시로 식사 상품권 골프를 제공하며 관리했다. 업체들은 뇌물을 건넨 후 입찰에서 탈락해도 손해 볼 것이 없다. 다른 사업의 입찰이 계속 이어지고 심의위원은 후보군 50명 안에서 선정되기 때문에 보험료를 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천지검이 발표한 한국환경공단 입찰비리는 정부 발주 공사를 둘러싼 후진적 뇌물 관행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특히 연루된 인물이나 수법·내용 면에서 뇌물비리의 완결판이라 할 만하다. 연루된 심사위원들은 공단 임직원·교수·공무원 등 민·관·학계가 총망라돼 있다. 또 심사위원들은 돈을 받은 업체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자신이 후한 점수를 줘 공사를 수주하면 해당 업체에서 돈을 받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기업은 돈을 받고도 최고 점수를 주지 않은 심사위원에게서 돈을 돌려받지도 않았다.
2007년 서울시의 동남권 유통단지 설계평가 때는 대학교수들이 업체들로부터 2천만~1억2천만원의 연구용역을 뇌물로 받기도 했다. 건설업체들이 서울과 지방의 대학교수들에게 사외이사 자리를 번갈아 맡게 해 심의위원이 변경될 경우에 대비한 보험을 들기도 한다. 건설업체들이 관급공사 발주기관마다 50~70명씩 구성돼 있는 심의위원들에게 접근해 해외세미나 참석 경비, 가족 생일잔치 비용을 대주거나 정기적으로 자문비를 입금하는 것도 그런 인맥 관리의 일환이다.
교수들로 구성된 학회가 관련 업체의 기부금에 크게 의존하는 사례도 흔하다. 한 공사를 놓고 여러 업체가 컨소시엄을 형성해 수주 경쟁에 나설 경우 각 업체가 관리해온 심의위원 숫자만 합쳐도 절반을 훨씬 넘는 일도 흔하게 빚어진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도시계획·교통평가·건축 위원회 위원들을 비롯한 각종 위원회 위원들이 관련 업체나 단체의 집중적인 로비를 받는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러니 대학교수나 연구소 박사 같은 지식인 사회에서 정부의 무슨 위원회에 들어가려고 기를 쓰고 달려드는 것이다.
국책사업 비리는 혈세낭비와 부실로 이어진다. 업체들은 뇌물에 들어간 돈을 공사비 부풀리기로 벌충했다. 국민 세금을 나눠 먹은 셈이다. 업체의 여량은 뒷전이고 뇌물을 많이 뿌리는 업체가 사업권을 딸 가능성이 커진다. 국책사업 수주업체 선정 과정에서 뇌물이 오가는 것이 환경공단에 국한된 일은 아니다. 토건업체들은 심의위원 후보들에게 수시로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고 취직 부탁을 들어주며 환심을 산다는 게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관급공사의 심의위원들이 뇌물을 받으면 민간인이라도 공무원 신분에 준해 형법상 뇌물죄를 적용받게 돼 있다. 형사처벌 못지않게 해당 위원의 소속학교, 신상명세, 범죄협의를 모두 공개해 지식인 사회가 자극과 충격을 받고 윤리적으로 재생할 계기를 만드는 것이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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