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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심을 원망하면 정치는 끝이다 |
2010년06월18일(Fri) |
| 나경택<수석논설위원, (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회장)> |
1950년대, 60년대만 해도 투표 때면 “5명이 모이면 막걸리, 10명이 모이면 소주”라는 말이 유행했다. 투표에 갔다가 선거운동원들이 건네는 막걸리를 받아 마시거나 고무신을 받아들고 가는 유권자가 많아 ‘막걸리 선거’, ‘고무신 선거’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후보자들은 서로 상대방이 유권자에게 뭔가 건네는 현장을 잡기 위해 순찰조를 짜 투표소 인근을 감시하고 다녔다.
6·2 지방선거를 위해 전국에 1만3388개 투표소가 설치된다. 투표소는 보통 학교나 동사무소, 교회 등에 주로 설치해 왔는데 이번 선거에선 합기도장·궁도장·마을창고·국밥집까지 투표소로 활용됐다. 지난 1월 공직선거법이 바뀌면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종교시설을 투표소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부산의 경우 거제3동 유림아파트 주차장 등 6곳에 몽골식 대형텐트를 설치해 투표소를 만들기로 했다. '거제3동 1투표소'는 2008년 17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인근 교회에 차렸었다. 교회가 아닌 투표장소를 구하다가 조건에 맞는 곳을 찾지 못해 결국 모두 45만원을 들여 23㎡(약 7평) 크기의 몽골 텐트 3개를 빌려 주차장에 설치했다. 대구엔 사우나 투표소, 경남 진해엔 스크린골프장 투표소까지 등장한다.
이번 선거는 선거업무에만 38만명이 동원되고 선거비용이 8300억원에 달해 사상 최대규모가 됐다. 3억여장이나 되는 투표용지를 쌓으면 높이가 30㎞로 백두산의 11배, 63빌딩의 120배에 이른다. 중앙선관위는 투·개표 비용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전자투표 시스템을 4년 전에 개발했다. 2008년부터 도입하려다가 정치권의 반대로 지지부진하다. IT강국이라면서 투표는 언제까지 20세기식으로 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6·2 지방선거는 한나라당이 총체적으로 패배했다. 이번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54.5%로 잠정 집계됐다. 1995년 지방선거가 시작된 이후 두 번째로 높은 투표율이며, 2008년 18대 총선의 전국 투표율 46.1%보다 8.4%포인트나 높아졌다. 이번 선거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그만큼 컸다는 이야기다. 투표율이 올라가면서 선거 판세도 크게 움직였다.
한나라당은 4년 전 2006년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뒀었다. 한나라당은 당시 서울시장, 경기지사, 인천시장 등 수도권 3곳을 모두 이기며 16개
시·도지사 중 2곳에서 승리했다. 시장·군수·구청장 230명을 뽑는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서울 구청장 25곳을 싹쓸이하는 등 호남을 뺀 전국 기초단체장의 82%를 차지했다. 이어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역대 대선 사상 최대 표 차이로 승리했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의 강세는 이어졌다.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그간의 국정 운영에 대한 민심의 호된 평가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 수년간 각종 선거에서 한나라당에 표를 몰아줬던 국민은 집권 여당이 주류와 친박으로 갈려 싸움을 벌이는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여권이 이같은 고질적인 내부 분열과 갈등을 그대로 두고서는 임기 후반의 국정 운영은 물론 앞으로 있을 다른 선거에서도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야권에선 친노(친노무현) 후보 상당수가 선전했다. 서울(한명숙) 충남(안희정) 강원(이광재) 경남(김두관) 등 5개 시도지사 후보를 비롯해 30여 곳의 광역·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친노 후보들이 기세를 올렸다. 유권자들이 이념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세대교체를 지지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스스로의 비전과 정체성 확립보다는 친노 인사들에게 후보 자리를 대거 내주고 과거의 추억을 팔아 선거를 치르는 한계를 드러냈다. 민주당은 미래지향적 비전을 갖고 여당과 생산적 정책경쟁을 통해 수권야당의 면모를 갖춰나가야 할 것이다.
여야는 이제 민생의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 민심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변해야 할 때 변하지 못하고 지켜야 할 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민심은 오늘 한나라당을 떠났던 방식으로 민주당을 떠날 것이다.[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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