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고 또 미안할 따름이다. 부산에서 짐승만도 못한 흉악범의 손에 꽃다운 소녀가 무참히 짓밟혔다.
2008년 8살짜리 나영양을 상가 화장실에서 성폭행한 조두순은 강간치상 등 전과 17범이었다. 2007년 혜진·예슬양을 토막살해한 살해범도 상습 성폭력범이었다. 2006년 용산에서 여자 어린이를 성폭행한 뒤 시신을 태웠던 범인은 집행유예 상태였던 성폭행 전과자였다.
2007년 제주에서 9살짜리 여자 어린이를 성추행하고 죽인 범인은 전과 21범, 2008년 일산 아파트에서 초등학생을 납치하려던 범인은 5명의 어린이에게 몹쓸 짓을 해 1년을 교도소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분노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던 어른들은 뭘 하고 있었기에 이번엔 집에 고이 있던 아이까지 납치,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진 것인가.
부산 이모양 사건은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범죄라는 점에서 더욱 안타깝고 개탄스럽다. 범인 김길태는 잇따른 성범죄로 수감됐다 출소한 뒤 최근 이양 집 인근에서 또 성폭행을 저질러 수배된 상태였다.
‘전자발찌법’ 시행(2008년 9월) 이전에 범행을 한 전과자라 관리가 안됐다는 건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경찰이 손을 놓고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1차 범행 장소 지척에서 더 끔찍한 범행이 버젓이 자행됐단 말인가. 재범이 예상되는 성범죄자를 아무런 감시 없이 나다니게 했으니 움직이는 흉기를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다.
경찰이 실종 신고를 접하고도 단순 가출로 보고 미적거린 것 역시 어처구니없다. 눈 나쁜 아이가 가출하며 안경도 챙기지 않았단 말인가. 뒤늦게 수색에 나선 것도 모자라 다 잡은 범인을 놓치고, 코앞에 있던 시신을 실종 11일 만에야 찾아내는 등 일련의 헛발질에 대해 경찰은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김길태(33)는 두 차례 성범죄로 11년을 복역했다. 1997년 9살 여자 아이를, 2001년엔 30대 부녀자를 성폭행해 3년·8년을 교도소에서 살았다.
어린이 성폭행은 그 어린이의 일생은 물론, 가족까지도 구렁텅이로 밀어넣는다. 지난해 경찰에 신고된 아동 성폭력 사건은 1천17건이다. 부모가 쉬쉬하고 넘어가는 사건을 합치면 한 해 수천 명이 피해를 입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런 희생이 더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
여야는 18일 ‘원 포인트 국회’를 연다고 한다.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민생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하루 회기의 임시국회를 여는 것이다. 체포된 김길태 사건과 관련해 전자발찌법 등 성폭행 관련 법안들도 입법을 추진한다고 한다.
두 달에 한 번씩 임시국회가 열리는 현 국회에서 이런 식으로 본회의를 여는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본회의에 상정돼 있던 39개 민생법안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방치됐다. 여론이 들끓자 원 포인트 국회를 열겠다는 것이다. 꼭 이렇게 매를 맞아야 일을 할 것인가.
진즉 국회가 계류 중인 관련법들을 통과시켰다면 무고한 어린아이가 희생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2008년 12월 조두순 사건이 터졌을 때만 해도 여야는 경쟁적으로 아동성폭력방지법안을 쏟아냈다. 그런데도 유전자은행법을 제외하고는 20여 건의 법안이 모두 법사위 책상에서 잠을 자고 있다. 여론에 영합해 생색만 냈지 정작 어린아이들의 고통에는 무감각한 탓이다.
물론 전자발찌법을 둘러싸고 위헌 논란까지 벌어져 치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이번 원 포인트 국회에서 처리될지도 불투명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시간이 없어 진지한 검토를 못한 것은 아니다.
시간이 있을 때는 정쟁만 벌이다 사건이 터져서야 부산을 떠니 국민들의 심사가 뒤틀리는 것이다. 국회와 의원들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찌른다. 국회의원들은 의원 배지를 달고 다니기가 부끄럽지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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