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 때 미국 육군 소령으로 복무하던 하버드대 비교심리학자 로버트 여키스가 지원병들의 지능을 검사하자고 제안했다. 효율적인 인사를 하자는 뜻이었다. 그는 다른 심리학자들과 함께 ‘육군 알파(Army Alpha)’라는 최초의 단체 지능검사를 만들었다.
여키스를 돕던 젊은 심리학자 칼 브리검은 이 시스템을 보완해 대학 입학시험으로 발전시켰고, 1926년 SAT(Scholastic Aptitude Test·대학수학능력시험)가 선보였다.
학업 능력을 가늠하도록 고안된 SAT는 1938년 미국대학위원회 소속 대학들이 공통 장학생을 선발하는 잣대가 됐다. 1942년부터는 모든 대학 지원자가 치르는 시험으로 발전했다. 이젠 1년에 7차례, 한국은 6차례 실시돼 세계에서 해마다 300만명이 응시한다. 2000년엔 대원외고 여학생이 한국인 첫 만점을 받았다.
조기유학 열풍과 맞물리면서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들어선 SAT 전문학원이 전국에 100개가 넘는다. 방학마다 미국 유학생과 동포 자녀들이 ‘역(逆)유학’을 와 3주에 1천만원짜리 족집게 강의를 찾아다닐 정도다. 스타 강사는 연봉 1억원에 웃돈까지 받고 학원을 옮겨다닌다.
30대 학원 강사가 작년 10월부터 네차례나 SAT 문제지를 빼돌린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대학생 3명을 시켜 지우개 안에 작은 칼을 숨겨 들어가게 한 뒤 시험지를 오려내거나 공학용 계산기에 입력시켜 문제를 빼돌렸다고 한다. 한국에서 SAT 문제 유출이 드러난 것만 7번째다. 2007년엔 응시자 900여명의 성적이 모두 무효 처리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강남의 또 다른 학원강사는 작년 1월 태국 방콕에서 SAT 응시자를 매수해 빼낸 문제지를 스캔 화면으로 넘겨받았다. 그는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SAT를 치를 한국인 유학생 2명에게 문제와 정답을 이메일로 보냈다. 시차 때문에 같은 시험을 태국에서 12시간 먼저 치른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이 강사가 문제를 빼낸 직후 설명회를 갖고 “방금 태국에서 따끈한 기출 문제를 갖고 왔다”고 하자 학부모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고 한다. “어떻게든 원하는 대학만 가면 된다”는 학부모의 빗나간 이기심과, 돈에 눈이 어두운 학원가 과열경쟁이 세계에 드문 SAT 문제지 도둑질을 부추기고 있다.
이번 사태는 우리사회의 교육열에 일대 경종을 울리고 있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이런 형태의 기저에는 내 자식의 점수만 높일 수 있으면 방법은 가리지 않는다는 일부 학부모의 비뚤어진 교육열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드러난 부정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다. 여기에는 학부모와 학생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지난번 SAT 시험지를 유출한 학원에서 학부모들은 “기왕에 노출된 문제이니 우리 아이에게도 보여 달라”고 했다고 한다. 도를 넘은 이기심과 도덕불감증이다.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도 나한테만 결과가 좋으면 된다는 학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들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한들 나라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우리 사회에서 법과 규칙을 지키는 게 손해라는 인식이 만연한 것은 이런 비뚤어진 풍조와 무관하지 않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교육에 무관심한 일부 미국 학부모에게 ‘한국 부모들을 본받으라’고 자주 언급하는 것은 우리 학부모들의 교육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자식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키려는 교육열은 결국 인재를 만들어내고, 자원 없는 나라가 고도성장을 이룩하는 동력이 됐다. 그러나 열심히 공부해 좋은 성적을 얻는 것과 시험지를 도둑질해 부정을 저지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신뢰 상실에 따른 피해는 대학 입학에만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국가브랜드가 상처를 입고, 우리 경제의 젖줄이라 할 기업들까지 타격을 입을 우려가 있다. 사회가 이래서는 선진국이 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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