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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광정신’ 지키자 |
2009년08월24일(Mon) |
| 이준구<주필, 사설> |
민주화와 민족화애의 꽃을 피웠던 ‘인동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우리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 땅이 꺼지는 아픔을 감당할 길이 없다. 그것은 DJ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염원했던 가치가 민주·인권·평화로 집약되기 때문이다.
군부의 철권통치가 민주주의를 짓밟고 인권을 유린할 때 ‘행동하는 양심’으로 저항한 ‘후광(後廣)이야말로 이 땅에 “민주주의가 들꽃같이 만발하고 인권이 강물처럼 흐르며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처럼 피어 오르게 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거목(巨木)을 잃었다.
국민들은 흔들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외로움이 밀려오면 어둠 속에서 촛불을 찾듯 늘 후광을 찾곤 했다. 그 때마다 후광은 지혜를 알려 주었다.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은 후광 재임 중 가장 잘한 일로 ‘남북관계 개선 및 교류확대’(27.7%)를 지적했다. 그 뒤를 이어 ‘IMF 극복’(25.9%)과 ‘민주주의 강화’(16.8%)를 꼽았다.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2명 중 1명(52.2%)이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후광은 국정운영 리더십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7년 한국정치학회가 87년 민주화 이후 선출된 전·현직 대통령 4명의 지도력에 대한 국민의 정치의식을 조사한 결과, 후광은 10점 만점에 평균 5.36점으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으로 김영삼 대통령(4.10점), 노무현 대통령(3.97점) 노태우 대통령(3.82점) 순이었다. 후광은 국민설득, 외교능력, 위기관리 등 9개 평가 전분야에서 수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보수세력의 ‘잃어버린 10년’ 주장이 얼마나 공허하고 실체가 없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오히려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50년 동안 잃어버렸던 우리의 민주주의를 되찾는 10년이었다”는 후광의 언급이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후광은 혹독한 냉전 체제 속에서도 파격적인 ‘3단계 통일론’을 제안했고, 수평적 정권교체를 위해 김종필 총재와의 DJP 연대를 성사시켰다.
또한 IMF 조기 극복을 위한 금 모으기 운동을 성공적으로 전개했고, 반대세력의 온갖 비난과 저항 속에서도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이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강력한 정치철학과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변화와 개혁을 위한 창조적 리더십을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다.
물론 후광에 대한 총체적 평가는 역사의 몫인 것이다. 그러나 수평적 정권교체, 외환위기 극복, IT 정보기술산업 발전, 월드컵 성공, 남북화해기반 구축, 인권·복지 향상 등의 성과는 치적으로 기록될 수 있다고 본다.
후광이 서거하기 며칠 전에 병상을 찾은 김영삼 전 대통령은 반목과 갈등으로 점철됐던 기나긴 세월을 뒤로하고 마침내 극적인 화해의 모습을 보여줬다.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에서 고락(苦樂)을 함께했던 동지 간의 오랜 분열에 종지부를 찍은 장면이었다.
후광의 서거가 뜻을 달리하는 정치인을 한자리에 모으고 서로 대화하는 장을 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또 후광의 서거를 계기로 감정과 이념 갈등에 치우친 대북정책 논쟁이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대화로 전환되기를 기대한다.
햇볕정책 이후 남북 간의 긴장이 완화되고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졌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답답하긴 하지만 북한과의 교류도 많아지고 접촉의 창구도 늘어났다.
변변한 연락 채널도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에 비해서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라 하겠다. 우리는 논쟁의 어느 편에 서 있든 극단적인 독단은 버려야 한다. 햇볕정책의 공과를 잘 평가하고 활용하는 작업이 중요한 까닭이다.
후광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살아오는 동안 수없이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 했다.
정적들은 광주와 목포 사이의 도로에서 국회의원선거 유세 중인 후광의 차를 들이받아 살해하려고 했고, 그때 다리와 허리를 다쳐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다.
군부독재에 저항하다가 망명생활을 하던 중 일본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보쌈 당하듯이 납치되어 동해바다에 수장될 뻔했다가 미국 정보부가 띄운 헬기로 인해 기적같이 살아났고, 아주 오랜 동안 연금 생활을 해야 했다.
우리는 후광의 서거가 영남과 호남의 해묵은 지역갈등이 해소되는 계기가 되길 빈다. 고질적인 지역주의는 한국정치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지역주의는 반목하는 세력 간의 불신을 낳고, 불신은 상대방의 존재와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부인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후광은 “험난한 정치생활 속에서 나로 인해 상처입고 마음 아팠던 분들에 대해 충심으로 화해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우리 모두 하나 같이 단결합시다. 내일의 희망을 간직하고 열심히 나아갑시다. 큰 대의를 위해 협력합시다”라고 말했다.
여야 정치권은 이러한 ‘후광 정신’을 주춧돌로 삼아 민주정치 완성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용서와 화해가 모진 한파를 이겨내고 봄이 오면 인고의 꽃을 피우는 인동초의 정신으로 보기 때문이다. MB 정부는 현대사에서 정치보복의 유혹을 과감히 떨쳐내야 할 것이다.[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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