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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자락에서 만난 조선선비 |
2009년07월29일(Wed) |
| 안용호<논설위원, 전 광주시교육청 장학담당장학관> |
‘그대의 허리춤에도 방울소리 울리는가’라는 주제로 남명 조식의 유적을 답사하는 광주 민학회에 동참하여 지리산 덕천동 산천제를 찾았다.
남명 조식에 대하여 우리 호남의 기대승이나 퇴계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필자에게, 벼슬도 마다하고 허리에 방울과 칼을 항상 차고 다니며 제자들을 가르치는 꼬장꼬장한 지리산 선비는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조식은 존경할만한 사람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열망인 ‘된 사람’ 즉, 올곧게 절개를 지키고 두루 사람들을 사랑하며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원칙을 지키며 살다간 조선 선비의 전형을 보여준다.
조식은 항상 쇠로 만든 방울을 차고 다니며 그 방울 소리를 듣고 정신을 깨우쳤다고 한다. 그 방울은 성성자라고 불렸는데 ‘나는 방울 소리가 날 때마다 늘 조심하며 내 자신을 꾸짖어 왔다’고 제자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또 그는 늘 칼을 차고 다녔는데 사색할 때 졸음이 오면 칼을 만지면서 졸음을 쫓았다고 한다.
칼자루에는 ‘안으로 밝게 하는 것은 경이요 밖으로 끊는 것은 의다’라는 뜻의 ‘내명자경 외절자의’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경은 마음인데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을 실천하지 않는 것도 자신을 속이는 옳지 못한 것이라고까지 본 것이다. 매우 높은 경지다. 경과 의가 그의 사상의 핵심인 것이다. 자기혁신을 통하여 인간을 발견하고 내 발부터가 하늘이라고 하면서 ‘나를 없애라’고 주장한 경의 최고 경지에 오른 호남의 기대승과 대비된다. 기대승은 사람이 하늘이라고 생각했다. 조식은 불교와 도교의 사상까지 받아들여 마음속에 녹여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낸 선비로 보인다.
48살 되던 해에는 삼가현 토동에 ‘뇌룡정’을 지어 학문에 몰두했는데 뇌룡은 장자에 나오는 말로 ‘고요히 있지만 신비한 조화가 드러나고 천둥 같은 소리가 난다’는 뜻이다. 61세에는 지금의 산청군 시천면 사리, 덕산의 사윤동에 ‘산천제’를 짓고 학문을 연마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산천제의 산천은 ‘강건하고 독실하며 휘광하여 날마다 그 덕을 새롭게 한다’는 뜻을 담은 주역의 ‘대축괘’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지리산 ‘산해정’에서 벼슬의 뜻을 접고 산림에 은거하며 성현의 학문에 전념하면서 제자를 가르친 것은 공자의 탄금정신에 비길만하다. 왜냐하면 임진왜란때 곽재우를 비롯한 수많은 의병장들이 그의 제자였기 때문이다.
남명이라는 호도 장자의 ‘봉정만리’에 등장하는 상상속의 하늘에 있는 연못인데 이로 보아 유불도의 사상을 모두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선비정신은 ‘단성현감사직상소문’에서 도드라진다. 단성현감에 임명되었으나 임금에게 거절의 상소를 올리면서 문정왕후는 깊은 궁중의 ‘과부’에 불과하고 명종은 ‘고사’ 즉, 외로운 아들에 불과하다는 직격탄을 날린다. 원칙에 어긋나는 일에 대하여 죽음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인 것이다.
일본에는 사무라이 정신, 미국에는 뉴프론티어 정신, 영국에는 신사도 정신, 중국에는 중화정신, 프랑스에는 국가지상주의의 정신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선비정신이 있다. 선비에 대하여 게으르고 당쟁만 일삼았다고 폄훼하는 것은 식민사관에 의해 굳어버린 선입관 때문이다. 선비는 조선을 지탱한 버팀목이었다. 선비가 있었기에 500년을 이어올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선비는 유학에서 말하는 군자였다. 선비는 ‘청렴’을 으뜸으로 삼았다. 선비는 부지런하고 검약했다. 후덕도 선비가 갖추고 있는 덕목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노블레스 오불리주이다. 선비는 다른 사람이 헐벗고 배고픈 것을 그냥 보지 못한다. 나눔과 베풂에 강한 것이 선비이다.
조식이 만든 ‘신명사도’는 인간이 안팎으로 마음을 잘 다스려 지극한 선에 도달하는 것을 도식화한 것으로 군왕이 지치를 이룩하는 것에 비유한 것이 특이하다. 그는 경의 경지에 오른 군자였다. 그는 스스로를 ‘처사’라 했다.
우리나라는 선비의 나라다. ‘인의예지’란 학문으로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학행일치라 했다. 선현의 가르침을 본받아 사람을 사랑하고, 바른 길을 따라 걸으며, 겸손한 태도로 다른 사람을 공경하는 인의예지의 모범을 보여준 조선의 참 선비가 바로 조식이다. 선비는 죽은 뒤에야 비로소 군자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대학에서 ‘남명학’을 연구하고 서원을 지어 그를 기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우리 역사를 뒤돌아보건대 어려움에 처하거나 죽음의 위협에 처해 있을 때 조식처럼 선비로서 진면목을 보여준 인물이 많았다. 선비정신을 되살려 우리 아이들을 가르쳐야할 때이다.[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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