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가뭄 속에서도 산야는 물론 도심을 장식하고 있는 각종 봄꽃은 유난히 화사하기만 하다.
영취산 진달래에 이어 대원사 가는 길의 벚꽃과 도로 곳곳에 깔린 꽃 잔디가 만개하여 상춘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으며, 가지각색의 철쭉은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가 한창이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활짝 핀 벚꽃이 일주일도 못 가 흩날리는 꽃비로 변해 사라지듯, 화려한 꽃들의 향연 속에 봄날이 가고 그 봄날과 함께 우리사회의 기둥인 불혹의 40대가 갈 길을 잃고 휘청거리고 있다.
‘40대…/ 우리는 우리를 이렇게 부른다/ 애수(哀愁)의 사십대…(중략)/ 은퇴하기에는 너무 젊고 도전하기에는 늙은 사람들/ 부모님에게 무조건 순종했던 마지막 세대이자, 아이들을 독재자로 모시는 첫 세대(중략)/ 부모를 잘 못 모셔 처와 부모 사이에서 방황하고/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하는 걸 미안해하는 세대/ 이제 우리는 우리를 퇴출세대라 부른다(중략)/ 진정 우리는,/ 이렇게 불림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돌아올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가야만 하는 것일까/ 이는‘40대의 애수’란 제목의 지난 2002년도 작자 미상 글이다.
사오정 이름의 슬픈 40대는 인생의 뼛속 진국이 우러나오는 시기다. 그래서 “50대는 늦으니 40대에 올인하라”는 ‘요즘말’도 생겨났다. 그러나 대한민국 현실에서 마흔은 ‘마(魔)의 나이’가 된지 오래다. 일찍이 공자가 삶에서 일체의 의혹이 사라졌다고 해 붙인 불혹(不惑)도 틀린 말이 되고 있다. 오히려 미혹(迷惑)에 더 가깝다.
40대는 지금 청춘을 불살랐던 일터에서 ‘사오정’이라는 이름의 슬픈 멸종동물로 분류되는 씁쓸함을 감내하고 있다.
20대 젊은 남자의 벗은 몸이 인기를 끄는 비디오 시대에 허물어져 가는 육체를 감추기에 급급할 정도로 허약하다. 디지털기기 앞에선 맹수와 맞선 검투사처럼 식은땀을 흘리기도 한다.
40대는 집에서 직장을 걱정하고, 직장에서 가정을 염려하며 산다. 마이너스 통장은 한계로 치닫고 있지만 월급날은 멀기만 하다. 지갑 속엔 현금 대신 한도 초과된 각종 카드가 자리 잡고 있다. 그래도 그들은 가정과 직장을 위해 희생할 줄 안다.
40대가 하는 일은 또 있다. 인생의 절체절명의 선택인 ‘사표 쓰기’가 바로 그 것이다. 40대는 인생의 경영자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자아발견이 곧 자아실현의 토대가 된다는 점도 인식하고 산다. 그러나 사회·경제 전반이 혼란스러워지면 인식의 혼돈을 겪게 된다. 40대의 희생은 이 때 가장 커진다.
이제 40대가 걱정 없이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서 경제발전을 이끌어야 한다. 구태가 반복되면 불행만 남는다. 40대의 활발한 활동은 50~60대를 행복하게 만든다.
마흔의 나이가 ‘미혹’이 아닌 ‘불혹’이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다. 40대는 지금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중추다. 중심이 꺾이면 전체가 무너진다. 40대를 더 이상 ‘불면과 동침’하는 우울한 세대로 만들면 대한민국에서 희망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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