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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암서원’ 호남유림 메카로 조성 |
2008년12월23일(Tue) |
| 이준구<주필, 시인> |
장성군(군수 이청)은 조선시대 호남의 대표적 유학자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 선생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필암서원을 호남 유림의 메카로 조성하고 있다. 고무적이다. 그것은 군에 따르면 지난 1999년부터 시작한 필암서원 성역화 사업이 내년 5월에 마무리돼 그 면모를 갖추게 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야말로 이청 장성군수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아닐 수 없다. 도의(道義)가 땅에 떨어진 요즘에 이 군수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경제적 가치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도덕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우리는 장성군수를 덕(德)이 있는 군수라고 본다.
장성군은 지난 1999년 유물전시관 신축을 시작으로 명지대학교 부설 한국건축문화연구원의 마스터 플랜을 기초해 필암서원 부지 조성, 주차장 건립, 교육관 건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5월에는 26억5천만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유물전시관을 비롯 수장고 및 관리동, 휴게실, 연결회랑, 외삼문 등 총 539㎡ 규모의 전통 한옥조 건물을 준공해 하서 선생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42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숙박과 선비체험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할 수 있는 1천986㎡ 규모의 진덕원, 숭의관 등의 교육관 건립을 추진 중에 있다.
장성군은 필암서원 성역화 사업이 완료되면 전통과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선비의 고장으로서 발돋움하고 한학을 배우는 유생 및 유림들의 배움터로 각광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퇴계 이황과 학문으로 쌍벽을 이뤘던 하서 선생은 문묘에 모셔진 정몽주 등 ‘동국 18현(東國十八賢)’ 가운데 유일한 호남 인물이다.
하서 선생의 삶은 호남절의의 근간을 이뤘다. 선생은 제자로 가르쳤던 인종(仁宗)이 갑자기 승하하자 관직에서 물러난 후 15년 동안 다른 임금을 섬기지 않고 초야에서 학문을 닦았다. 이른바 “충신 불사 이군(忠臣不事二君)”이 그것이다.
하서 선생은 호남의 유학자들에게 학문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선생은 면앙정 송순의 문인이고, 송강 정철의스승이기도 하다. 또 소쇄원을 지은 양산보나 미암 유희춘 등 당대의 문장가들과는 사돈지간으로 학문과 교분을 나눴다.
특히 하서 선생은 퇴계 이황과 8년동안 ‘사칠논변(四七論辯)’을 펼침으로써 조선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고봉 기대승의 학문에 자양을 공급한 큰 선비였다. 또한 학문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함께 계산풍류를 노래한 1500여 수의 작품을 남긴 위대한 시인이었다.
그럼 하서 선생이 5세 때에 지은 시(詩) 한 수를 다음에 들어 보기로 하자.
<정월 보름날 저녁>
지세 따라 높고 낮게 비추어 주고,
천시 멎춰 일찍 늦게 뜨기도 하네.
사람들 무어라건 꺼릴 게 있나?
달은 본래 사심(私心) 한 점 없으니.
이 시는 정말 보름날 저녁에 뜬 ‘달’을 보고 읊은 것이다. 일종의 영물시(詠物詩)다. 그런데도 겉만 묘사하지 않고 그 내적 의미를 추리해 서술하고 있다. 달이 가진 자연적 원리나 속성을 파악함과 동시에 그것을 인성적(人性的)으로 해석해 읊고 있다.
아주 유명한 시다. 과연 다섯살 나이에 어떻게 이렇게 깊은 생각을 했을까? 하늘의 이치와 땅의 이치를 꿰뚫어 보았다. 당시 사람들은 이 시를 보고 선생을 ‘생이지지(生而知之)’라 했다고 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자연과 세상을 바로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훗날 대학자로 대성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하서 선생의 사상은 무엇인가? 인간수행론을 담고 있는 도학(道學)이다. 도학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하서 선생은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를 했다. 먼저 시(詩)를 보면 알 수 있다. “학문이란 다름 아닌 마음에 달렸으니 방심(放心)을 거두면 어려울 것이 무엇이오? 온갖 이치 마음속에 밝게 있으니 항상 마음 살펴야지 방심해선 안 되네”
온갖 이치를 밝게 살피지 못하는 방심은 자칫 자신을 편색한 상태에 빠뜨려서 도덕성을 질식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부단한 성찰과 수행이 요청되는 것이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을 기약하는 하서 선생의 학문에 있어서 마음의 중대성이 이에 근거한다. 선생의 글 곳곳에서 나타나는 바 마음의 강조가 관렴적 성향을 드러내 주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윤리 도덕인을 넘어서 자신의 생명정신을 우주만물에 개방·실현하고자 했던 도학자로서 기울인 그러한 관심과 노력은 정당하다.
둘째, 하서 선생의 도학상 인간본질의 실현은 궁극적으로 타자(他者)의 삶을 성취시켜 주는 데에 그 목표를 두었다. 선생의 학문 목표는 결코 자신의 개인적인 완성에 있지 않았다. 만물에 대해 개방적 생명정신을 타고난 우주적 존재로서 그의 완성은 곧 타자(他者)의 성취를 예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선생이 자임한, 이른바 ‘성기성물(成己成物)’의 이념이다.
하서 선생의 도학정신은 인류애(人類愛)와 생명애(生命愛)를 그 정점에 세웠다. 우주만물을 향해 열려 있는 마음은 심지어 일초일목(一草一木)에 대해서까지 물아일체적(物我一體的) 사랑의 눈빛과 손길을 보냈다고 여겨진다.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면 하서 선생의 도학은 하나의 인간학(人間學)이요, 그것도 실천적 인간학이다. 선생은 인간의 우주적 본질을 알아 그것을 자신의 삶에서 실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우리는 차제에 장성군수에게 다음 몇 가지를 주문하고자 한다. 노파심에서 군정(郡政)의 방향이 항상 장성군민의 여망에 부합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첫째, 장성군수는 하루 속히 한문교수를 초빙해 전직원들에게 한문교육을 해야 한다. 모르는 우리 말의 듯을 이해할 분만 아니라, 유명한 도학자 하서 선생의 사상도 한문을 통해 이해되기 때문이다.
둘째, 장성군수는 반드시 장성선비대학에 새로운 커리큘럼을 만들어 ‘하서도학반’을 두어야 한다. 작금에 도의가 땅에 떨어져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되고 있는 까닭이다.
장성군 당국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공직자의 기본적인 의무임을 인식하고 ‘하서 선생 도학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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