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할머니께서는 “남에게 적선을 하면 복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도 인연이다”라고 말씀하시며 과객을 재워주고 노잣돈도 주며 환대하셨다. 그 모습이 기부천사 문근영 사건을 계기로 떠올랐다. 그리고 적선과 인연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적선과 아름다운 인연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 오지만 좋은 인연과 아름다운 결실을 맺은 홍순언과 류씨 부인의 만남만큼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드물 것이다. 이들의 인연은 나라의 운명까지 바꾸었다.
홍순언은 이조시대 정사를 따라다니는 통역관이었다. 한 번은 북경으로 가는 도중 통주에 들러 밤에 기생집에 들렀는데 들어오는 여자가 소복을 입고 있었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부모님 장사지낼 돈이 없어 몸을 팔게 되었다고 하는지라 가지고 간 삼백 금을 다 털어주고 왔다. 그 후 여자는 명나라 예부시랑 석성의 후처가 되었는데 이 여자가 바로 류씨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왕실의 계보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종계변무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다. 종계변무란 이성계의 정적인 윤이와 이초가 명나라로 망명해 ‘이성계가 친원파 공신 이인임의 후사’라고 모함했고, 명나라는 이 말을 그대로 믿고 ‘태조실록’과 ‘대명회전’에 기록했다. 이렇게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이 이인임으로 잘못 기록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역대에 걸쳐 사신을 통해 주청했던 사건이다.
임금은 교지를 내려 이번에 해결을 못하면 수석역관의 목을 베겠다고까지 하였다. 이렇게 되자 역관으로 가기를 원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역관들은 나랏돈 삼백 금을 쓰고 공금횡령죄로 옥에 갇힌 홍순언을 감옥에서 빼주면서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 가서 해결하여 목숨을 부지하라고 하였다.
1584년 선조 갑신년에 명나라에 간 홍순언은 예부시랑 석성을 만났고 그의 도움으로 종계변무의 건을 해결하였다. 그리고 그의 부인 류씨가 자개상자 열 개에 손수 짠, ‘보은’이라고 쓰인 비단 선물도 가지고 돌아왔다. 홍순언은 지금의 청계천 주변인 보은단동에서 살았는데 보은단동은 류씨에게 받은 비단을 조선에 와서 사람들에게 팔아서 생긴 지명이다.
홍순원의 능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다시 발휘되었다. 우리나라는 명나라에 원군을 청하였는데 이때 석성의 힘이 또 작용한 것이다. 조선의 원군 요청에 명나라의 다른 대신들은 반대를 했지만 오직 석성만이 조선이 함락되면 다음에는 왜가 요동을 공격할 것이니 미리 조선에서 전쟁을 치루는 것이 좋다고 황제를 설득했다. 석성의 설득으로 명나라 황제는 21만의 군사와 은 900냥을 지원하게 된다. 병부상서로 있던 석성이 많은 원군을 보내어 잃었던 땅을 회복하고 사직을 보전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 것이다.
이렇게 홍순언은 지난날 류씨 부인에게 베푼 선행으로 조선의 종묘사직을 위기에서 구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된다. 홍순원은 그 후 광국공신에 책록되고 당릉군에 훈봉되었으며 청담동에서 여생을 마쳤다.
이후 명은 조선에 파병한 후유증으로 기운이 쇠하게 되는데 석성은 전범으로 몰리게 된다. 석성은 옥살이를 할 때 부인인 류씨에게 조선으로 망명할 것을 권유하고 옥사하였다. 부인 류씨는 석성의 말을 따라 조선으로 귀화했고 성씨를 해주석씨로 고쳤다. 지금까지 14대째 지리산 자락에서 자리를 잡고 살고 있으며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가 그곳이다.
필자는 일제 강점기 때 의병활동을 한 그의 후손 석상용의 비석을 추성리에서 보고 만지면서 많은 상념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홍순언이 업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류씨 부인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한편의 드라마 같지 않은가? 너무나 아름답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인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 인연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당사들의 몫이다. 우리들이 사는 삶은 원인과 조건에 의해 결과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반복하기에 악연이 될 수도 있다. 마침 전남여성단체회원들이 악플에 굴하지 말고 힘내라는 의미로 문근영양에게 굴비를 선물했다는 보도다. 인연 속에서 적선을 쌓는 일이야말로 지금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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