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등 30여개 농민단체는 25일 오후 전국의 농민 1만1000여명(경찰추산)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 여의도 문화공원에서 ‘한미 FTA 저지, 생존권 쟁취, 식량주권 실현을 위한 농축수산인 전국대회’를 개최했다. 충격적이다.
그것은 농민들이 농산물 가격 폭락과 생산비 상승, 쌀 직불금 논란 등 각종 현안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고 정부에 현실적 대책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농연 박의규 회장은 “망해 가는 기업에는 돈을 대면서 비료값·사료값 폭등으로 고통 받는 농민은 외면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김덕윤 전국여성농민회 총연합 대표도 “30년 농민운동을 했지만 개선된 것은 없고 고위 공직자가 쌀 직불금까지 빼앗아 가는 현실”이라며 “도시와 농촌이 합세해서 농촌이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는 옳은 말이다. 땅과 농민은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농산물 가격 폭락에 따른 시름을 보여 주기 위해 배추와 무, 사과, 배 등을 실은 대형 상여를 불태운 후에 여의도 일대 도로 2.2km를 행진했다. 행사장 주변에는 전투경찰 105개 중대와 물대포차 9대 등이 배치됐으나 큰 충돌은 없었다. 천만 다행이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시위를 하지 말고 말로 정부에 건의해야 한다.
전남 곳곳에서 2천여 명이 서울 집회에 참석한 25일 경찰은 농민들의 상경을 막지 않고 오히려 편의를 제공했다. 이날 전남지방경찰청이 무료로 제공한 빵과 떡, 음료와 생수는 80상자, 200여만 원 되는 비용은 관할 서장들이 판공비로 마련했다. 참 잘했다. 처음으로 민주경찰의 본을 보여준 것이다. 민경(民警)은 수어지교(水魚之交)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오늘의 농업은 어떠한가? 지금의 농업은 전체 인구의 6%인 농업인구가 GDP의 3%를 생산하는 산업인 것이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구조조정은 어느 정도 이뤄졌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됐어도 농업의 경쟁력은 살아나지 않았다. 16년간 130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 지원에도 불구하고 농민들 부채는 늘어만 갔고 소득수준은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심지사(寒心之事)가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농업 분야에 경쟁원리가 자리잡지 못한 상태에서 정부지원이 비효율적으로 집행됐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정부가 농업예산을 증액하기 시작한 것은 급격한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UR(우루과이라운드)과 WTO(세계무역기구) 체제 출범으로 한국 농업이 세계적인 경쟁에 노출됐고, 정부가 농산물 가격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갑자기 터졌다. 이렇게 ‘농업의 시장화’가 바르게 진행되기 시작한 시점에 정부는 대규모 투·융자 정책으로 농가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근본적으로 정부와 농민이 모두 ‘경쟁력 있는 농가는 정부 보호가 아니라 시장 경쟁의 고통 속에서 키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정부의 투·융자를 흡수해서 이익을 낼 만한 능력이 있는 농가가 확보되지 않은 가운데 실시되는 정부의 투·융자 정책은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투·융자 정책의 효과가 부진하자 농민들은 자신감을 잃었다. 정부에 대한 불신도 함께 커졌다.
하지만 정부는 농가의 경쟁력을 키우는 정책보다 농가의 소득을 보전해 주는 정책에 역점을 두기 시작했다. 정책의 합리성보다 예산의 크기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우선 돈을 많이 나눠주는 정책이 좋다는 식으로 상황이 흘러 버린 것이다.
농민들도 자연스럽게 정책을 담당하는 행정부보다는 예산의 크기를 결정하는 정치권에 매달리게 됐다.
따라서 시장경쟁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농업 구조개선이나 농민의 원천적인 소득 수준 향상을 위한 정책은 우선 순위에 있어서 뒷전으로 밀리게 된 것이다.
결국 우리 농업의 현실은 농정(農政)부재(不在)로 빚어진 셈이다. 그것은 정부가 생명 산업인 농업이 천하(天下)의 대본(大本)임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130조원의 막대한 예산을 써가면서 어렵게 얻어낸 값진 경험과 교훈을 헛되게 않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하루 속히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농업 예산을 정치적 목적에 활용되는 행태를 버려야 한다.
정부는 반드시 경영능력 있는 농가를 확보해 시장경쟁을 통해 농업의 주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반드시 농가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농가등록제’와 같은 정책을 실시하고 능력 있는 농업인이 마음 놓고 농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농촌의 교육·의료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또한 시장경쟁에 적합하지 않은 고령·소규모 농가를 위해 실속 있는 소득보전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 당국은 ‘농정에 대한 연구’를 철저히 해 우리 농업인들로 하여금 농업의 참된 주인(主人)으로 우뚝 서게 해야 할 것이다.
코믹스-200727.jpg)
.gif)
돌아가기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