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국정감사가 피감기관의 ‘방해’로 중단되는 파행을 빚었다. 피감기관 간부가 의원의 질의에 불만을 품고 협박하는가 하면, 정권의 실세가 장으로 있는 감사장에는 경찰을 배치하는 바람에 국감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감 도입 이후 초유의 풍경이다. 행정부의 독단을 감시·견제하자는 취지마저 실종될 판이다.
지식경제위의 한국산업단지공단 국감에선 공단 간부가 국감장 밖에서 야당 의원에게 행패를 부렸다. 민주당 최철국 의원이 공단 동남지역본부의 한 직원이 5억4000만원을 횡령했는데 이를 관리해야 할 본부장이 서울지역 본부장으로 영전했다고 지적한 게 발단이 됐다. 그 간부는 화장실에 가는 최 의원을 뒤따라가 라이터를 던지며 “안 그래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 두고 보자”고 협박했다. 이후에도 의원을 막아서는 등 소란을 피우다 공무방해 등의 혐의로 경찰에 넘겨졌다.
YTN 노조원 해고사태가 쟁점이 된 문화체육관광방송위의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 국감에선 입구에 배치한 전경 4명을 두고 민주당이 “경찰 감시하에 국감을 해야 하느냐”며 책임자를 추궁, 논란만 벌이다 끝났다.
무엇보다 의원들의 구시대적 권위의식이 문제다. 조금만 기분에 거슬려도 기관장에게 호통부터 치는 의원이 많다. 위세를 부리거나 피감기관의 군기를 잡겠다는 구태다. 혼쭐난 기관장은 부하직원을 질책한다.
국감이 불과 20일에 불과한데 감사 대상 기관은 500곳이 넘는다. 위원회의 감사 일정이 빠듯하다. 의원 개개인에게 할당되는 질의시간은 10분 내외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수박 겉핥기식 감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의원들은 겉형식에 집착하고, 피감기관은 ‘일단 피하고 보자’는 태도를 보이기 마련이다.
국감의 존폐 여부는 장기 과제로 넘기고, 우선 국감을 생산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정치 감사나 수사 감사가 아니라 정책 감사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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