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가운데 몸과 마음이 가장 넉넉해지는 계절은 뭐니 해도 가을이다. 점점 머리를 숙이는 곡식들이 황금빛으로 일렁이기 시작하며 들판으로 산으로 결실들이 가득한 계절이기 때문일까요? 모든 사람들의 마음도 한껏 여유로워지는 가을, 모두의 마음도 기쁨으로 충만하고 넉넉해지는 계절이다.
자연의 이치는 잠시 머뭇거림만 있을 뿐 이내 다시 평온을 찾았다. 얄궂고 변덕스러운 일기도 제풀에 꺾이면서 공기의 변화를 일으키고, 생물의 생체리듬은 계절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가을은 여유롭고 평화스러우며 풍성한 결실의 계절이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와 거센 빗방울을 견디며 심한 바람에도 꽃을 피우고 결국엔 튼실한 열매를 맺었다. 이는 우리네 농부의 땀과 거친 손길로 정성스럽게 가꾼 곡식은 받은 관심 이상으로 보답을 하며 알찬 결실로 다가왔다.
물가 하늘이 한 빛깔이라 천지가 맑고 밝아 심신을 맑게하는 가을은 바람소리가 부드러운 계절이다. 높고 맑은 하늘에서 조용히 불어온 하늬바람이 나뭇잎을 속삭이게 하고 코스모스와 갈대를 춤추게 만든다.
시인에게는 시상을 던져주고 화가에게는 많은 물감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한다. 짙은 푸름은 점차 그 빛이 엷은 황색으로, 또는 붉음으로 변할 기미를 보이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에 모든 만물이 한가한 휴식을 취하는 양 편안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이제 막 남녘 들녘에서는 벼 수확을 시작 했다. 잘 익은 나락은 콤바인 기계소리 속에 먹히면서 벼를 수확하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옛 농촌 모습이 이미 사라지고 없지만 과거속의 한 장면으로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 옛 남녘의 가을 풍경을 연상케 한다. 영산강, 섬진강, 탐진강 주위에는 황금빛으로 물든 논과 온갖 새들, 곤충들의 어울림은 풍요 그 자체이다.
황금빛으로 누르스름해진 가운데 허수아비 양팔 벌려 온몸으로 가을 볕 맞이하고, 가을바람에 이삭의 군무가 시작되면 할 일이 많아진 어른들은 걱정이 앞선다. 옛 농촌 들녘은 기계가 그리 발달하지 못했던 시기라 일일이 낫으로 많은 논의 벼를 베고 나란히 눕혀서 말려야 했기 때문이다. 수확 철이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온 가족은 추수에 힘을 모아야 했다.
옛 농촌은 일하기가 싫어서 꾀도 많이 부렸다. 숙제를 한다고 핑계를 대기도 하고, 낫에 손을 베이면 유난히 엄살을 부렸다. 철없던 그 시절 추억에 피식 웃음이 절로 난다.
또한 도시의 가을은 긴 가로수에서부터 찾아온다. 시내 도로변에 늘어선 은행나무에는 알찬 열매가 맺히면서 가을 햇살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가운데 나뭇잎은 붉게 혹은 갈빛으로 변해 하나둘 땅으로 내려앉는다.
현대식 구조물과 건물로 이루어진 도시의 밋밋한 색상이 화려하고 고운 가을빛으로 물들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도 곱고 아름답게 물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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