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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서의 문화사 |
2008년09월10일(Wed) |
| 안용호<전 광주시교육청 장학담당장학관> |
지난달 국방부가 23개 서적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하고 군내 반입을 차단하는 공문을 발송하자, 출판사와 출판단체 등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목록작성 중단 및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나라가 소란스러웠다. 미국에 망명중인 버마의 저항시인 마웅 소 챙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사실 책을 읽지 못하게 하고 불태우며 압박하는 일은 아주 오래 됐다. 익히 알고 있는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있고, 이에 쌍벽을 이루는 아랍 왕 오바루 1세 역시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을 불태워 4천개의 목욕탕에 6개월간 불쏘시개로 쓴 역사가 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많은 힘 있는 자들이 그들의 안위를 위해 위대한 책들을 금서의 목록에 넣고, 읽는 것을 방해하고 출판을 금지했다. 대별해 보면 정치적 이유로, 종교적 이유로, 성적 이유로, 사회적 이유 등으로 모질게 탄압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금서에 든 책은 많았다. 포악한 정권이 자신들을 비판하거나 곤란하게 하거나 위협할 만한 정보나 생각, 의견이 국민들에게 전해지지 않도록 차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덤스가 사람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수그러들지 않는 어두운 욕망을 끄집어냈다고 본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교황 파울루스 4세에 의해 금서목록에 올랐다.
이외에 정치적 이유로 탄압 받은 책들은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조지 오웰의 ‘1984년’,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버츠의 ‘20세기 사기극’, 페인의 ‘인간의 권리’, 스토우 부인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등 수없이 많고 이 책들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 훌륭한 작품들이다.
서양문명에서 서적 검열의 역사는 기독교의 초창기, 교회가 대립된 의견을 이단이라고 탄압하던 시절까지 거슬러간다. 그러나 압권은 이란의 최고 지도자 호메이니가 이슬람교를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살만 루슈디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고 그의 소설 ‘악마의 시’를 금서로 규정한 일이었다.
이는 역사 속에 묻힌 일들을 다시 불러온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모든 종교는 다른 종교의 서적을 금서로 여겼다. 가톨릭은 개신교의 자국어 성서를 탄압했다.
고대 유대인 학자들의 가르침을 모은 ‘탈무드’도 가톨릭이 탄압했다. 종교적 이유로 금서가 된 책은 훨씬 더 많다. ‘코란’, 몽테뉴의 ‘수상록’,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스탕달의 ‘적과 흑’, 다윈의 ‘종의 기원’, 디킨스의 ‘올리버트위스트’, 사다위의 ‘이브의 숨겨진 얼굴’ 등이 있다.
노골적인 성적 내용 때문에 금지된 많은 책들도 있다. 이 책들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채털리부인의 사랑’은 미국연방대법원에서 작품의 외설성을 심판받았지만 1969년 대학 문학 강좌에서 필수 교재로 채택되었다. 조이스의 ‘율리시스’, 나보코프의 ‘롤리타’, 헨리밀러의 ‘북회귀선’, 볼테르의 ‘캉디드’도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되었지만 대학교재로 쓰인다.
호손이 쓴 ‘주홍글씨’는 외설적이지도 않고 음란하지도 않은데 성적인 내용이라는 이유로 금지된 책이다. 이후 고전을 비롯하여 과거와 현재의 대표작들이 성적 이유로 법적 시련을 되풀이했다.
사회적 이유로 탄압받은 작품들도 많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표현과 인종차별 문제로 금지되었다. 스타인벡의 ‘생쥐와 인간’은 주인공이 미국 사회제도의 안타까운 부분을 드러내는 인물이라는 점이 문제가 되어 금지되었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도 독일에서 수난을 겪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앵무새 죽이기’ 등도 백인을 부정적으로 그린 저속한 책이라고 금서에 포함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당대의 금서는 후대에는 묘하게도 많이 팔리면서 유명한 책이 되었다는 것이 퍽 흥미롭다. 책은 권력이기에 겪어야 할 시련이 너무나 가혹했다. 전쟁으로, 폭정으로 제일 많은 책이 소실되었다.
금서의 역사라면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다. 정지용의 ‘향수’, 홍명희의 ‘임꺽정’, 김지하의 ‘오적’, 조정래의 ‘태백산맥’,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등 셀 수 없이 많다. 금서에 버금가는 우리나라의 서액의 사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규경은 ‘대동서액변증설’에서 자세히 말하고 있다.
이번 일은 우리에게 책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우리 어린이들에게 좋은 책을 골라 읽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히자.[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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