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제59회 제헌절을 맞은 가운데 올 해를 끝으로 내년부터 제헌절을 공휴일에서 제외 조치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가 반발하고 있다. 충격적이다.
그것은 다른 나라처럼 따로 건국기념일이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 운영의 근간인 헌법(憲法) 제정일의 의미를 퇴색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역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2005년 대통령령에 의거 지난해 공휴일에서 제외된 식목일과 함께 내년부터 제헌절을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키로 한 것은 개국기념일로써의 제헌절 의미를 고려하지 않은 조치다.
제헌절에도 변화가 온 것이다. 그래도 제헌절의 정신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대통령 권력에서 수난을 겪고 있는 헌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헌법은 건국과 전란(戰亂), 독재와 혁명 속에서 9차례 개헌이라는 풍상을 겪었다. 그야말로 상처투성이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서도 국가의 정신적 기둥으로 버텨왔다.
내년이면 60세다. 그런데 그런 헌법이 5살도 안된 정권에게 온갖 수모를 당했다. 현 정권은 헌법을 침해하는 것이 다반사(茶飯事)였다. 급기야 임기 말에 이르러서는 대통령 입에서 “그 놈의 헌법”이라는 폄훼(貶毁)까지 나왔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헌법의 주인은 국민이다. 선출된 권력이라도 헌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 바로 선출된 권력의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헌법은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현재의 헌법은 우리 헌정사(憲政史)에서 1987년 민주화(民主化)의 상징으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고, 국민이 진정한 주권자(主權者)로서 합의를 이루어낸 결실인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이루어낸 우리에게는 이러한 헌법 실현의 의지를 가지고 이 땅에 헌법국가(憲法國家)를 이룩하는 것이 목표라 하겠다.
하지만 1987년 이후 그간의 현실을 보면 여전히 국민의 합의와는 거리가 먼 권력투쟁(權力鬪爭)이 반복됐고, 유권자 50% 미만의 지지를 얻어도 당선되는 이상한 대통령제하에서 국가권력은 승자독식(勝者獨食)의 논리하에 승자의 이익추구에 동원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헌법의 혜택을 누리는 동시에 헌법에 대해 논쟁이 끊이지 않는 ‘헌법 시대’에 살고 있다.
현행 헌법에 의해 헌법재판소가 설치된 1988년 첫해에 접수된 헌법소송 사건이 39건에 불과했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사건이 폭증했다.
2000년 이후에는 매년 1000건을 넘게 됐고, 2005년부터는 1500건에 육박하는 헌법소송 사건이 접수되고 있다.
국민 처지에서 공권력의 행사나 특정 법률에 의한 기본권 침해를 문제 삼아 헌법소원 등 헌법소송을 청구하는 사례가 생활화된 점은 국민의 헌법의식이 그만큼 제고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제도의 활성화는 국가권력의 통제를 통해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게 되므로 헌법 발전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 사회에는 헌법과 국가의 공공성이 약화되는 틈을 타서 각종 특수 이익들이 분출해 남의 권리와 이익은 고려하지 않고 서로 자기 이익만을 내세워 아귀다툼을 하고 있다. 국민에 대한 권위와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한 정부는 이를 조정하기에는 역부족인 현상인 것이다.
헌법과 정부의 권위가 심하게 흔들리고, 정부가 분출하는 특수 이익들을 조정하는 데 실패하면서 공동선(共同善)이나 상생(相生)이라는 말은 공허하게 돼 가고 있다. 헌법을 우습게 아는 오만과 편견의 자유가 팽배해온 탓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마음 금할 수 없다.
각급 학교에서 반드시 헌법을 읽도록 해야 한다. 선생님께서 “이제부터 다함께 대한민국의 헌법을 읽어 봅시다”라고 하고나서 학생들로 하여금 한 조(條)씩 큰 소리로 낭독하게 해야 한다. 헌법 제2장의 ‘국민의 권리와 의무’만 읽혀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제10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중략)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제11조)
‘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제21조) 이 정도만으로도 학생들의 가슴은 자유의 물결로 울렁거릴 것이다.
헌법이 국민의 생활규범으로 살아 있는 법이 되기 위해서는 헌재의 역할이 중요하다. 헌법이 훼손되면 하위(下位)법질서도 함께 흔들리게 되는 까닭이다.
헌재는 하루 속히 국가권력이 헌법을 어기지 못하도록, 사회적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신속하고 분명한 견해를 밝혀야 한다.
사립학교법, 종합 부동산 세제(稅制), 노 대통령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 등의 결정을 오래도록 미뤄서는 안 된다.
헌재 당국은 이제부터라도 ‘헌법을 자기 편리한 대로 끌어다 붙이는 행위가 없도록 헌법 연구에 심혈을 경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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