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학위 위조가 범람하고 있다. 몇 년 동안 미술계와 대학가를 농락하다 최근에야 들통 난 신정아씨 사건은 도를 너무나 넘었다. 동국대 조교수,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신임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이란 길고 긴 직함이 모든 언론매체를 도배한 일이다.
이야말로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며 민주성지(民主聖地) 광주에까지 왔다가 발각돼 도망간 것이다. 광주는 사불범정(邪不犯正)의 고장인 까닭이다.
광주비엔날레는 지금 한갑수 이사장과 이사 27명 등 전원이 총 사퇴하고 신정아 감독을 검찰에 고발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쑥대밭이 되었다. 누구 하나 사과하는 이 없이 죄다 잠적하고 말았다. 한심스럽기 그지 없다. 남은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녀의 뒤를 봐주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우리 사회의 학위 검증 시스템이 매우 부실하다. 이 점이 문제라고 본다.
외국 박사학위 취득자는 법에 따라 귀국 후 6개월 안에 학술진흥재단에 신고해야 하지만, 의무가 아니다. 이른바 ‘지나친 학벌숭배’가 그것이다. 지낼 력 자 학력(學歷)이 아닌 힘 력 자 학력(學力)이 진짜 임을 알아야 한다.
거짓말과 거짓 이력이 통하는 우리 미술계의 누추한 현실을 눈 뜨고는 볼 수 없다. 아름다울 미(美) 자가 추할 추(醜) 자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주비엔날레 첫 행사는 대성공이었다. 182만 명의 관람객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2년마다 열리는 국제 미술전시회’라는 뜻인 비엔날레는 입장객이 30만 명만 넘어도 칭찬을 받는다. 112년의 역사를 지닌 유명한 베니스비엔날레도 최대 관람객이 100만 명을 넘지 못했다. 그것은 감상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우리의 182만 명이라는 관람객 수는 상식을 깨는 것이었다. 시민들이 적극 참여해 준 덕분이었다. 시민들은 5·18민주화운동에서 비롯된 광주의 우울한 이미지를 걷어 내고 싶어 했다. 문화예술을 통해 상처를 승화시켰던 것이다. 베니스비엔날레가 이탈리아를 디자인 강국으로 키웠듯이 지역경제를 살리고픈 꿈도 있었다.
광주비엔날레는 전국적인 문화행사 열풍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이 광주를 벤치마킹해 부랴부랴 문화행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경주문화엑스포, 전주 소리축제 등 숱한 행사가 뒤를 따랐다. 이처럼 불모 상태에서 이뤄진 첫 번째 시도인 만큼 행사를 출범시키는 것은 낙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광주비엔날레는 첫 행사를 잘치러 낸 이후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이 유쾌하지 않았다. 관람객 수는 점점 줄어들어 2004년 행사 때는 51만 명까지 떨어졌다. 운영의 주도권을 놓고 내부에서 세력 다툼이 벌어진 소이연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진 행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년 광주비엔날레는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광주비엔날레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모습인 까닭이다.
광주비엔날레의 부진은 시기적으로 좋지 않다고 본다. 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비엔날레 개최를 통해 문화의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만 오사카 타이베이 광주 상하이 후쿠오카가 차례로 비엔날레를 창설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요코하마 광저우 베이징이 가세했다. 지난해에는 싱가포르가 새로 뛰어들었다. 광주는 하루 속히 새 흐름을 포착해야 한다. 당장 코앞을 걱정하는 처지가 돼 있는 까닭이다. 매우 안타깝다.
이제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우선 당연직 이사 8명이라도 비상대책위원을 꾸려 새로운 이사진을 구성하고 새 이사장을 선출해야 한다.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제2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와 내년 9월 개막되는 제7회 광주비엔날레를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고 수준의 비엔날레를 만들어 보여주는 것 말고 다른 돌파구는 없다. 전시의 질(質)을 높여 명성과 권위를 쌓아 나가야 한다.
새롭게 태어나야 광주비엔날레는 땅에 떨어진 이름을 회복할 수 있다. 광주는 일신(日新) 우(又) 일신(日新)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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