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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판’보다 중요한 것 / 이승배<논설위원> |
2007년08월01일(W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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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114 안내원을 웃긴 이색 상호(常戶)에 대한 설문조사가 있었다. 114안내원을 웃긴 소위 ‘명작’ 상호를 보면 ‘돈내고돈먹기(고깃집)’과 ‘탄다디비라(고깃집)’, ‘진짜루(중화요리집)’등 재치 있는 상호들이 선정됐다. 언어학적 해학(諧謔)과 주인의 센스가 돋보이는 이 명칭들은 업종의
특색을 잘 살리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절제미를 보여준다.
사실 오랜 전통이나 솜씨로 유명한 곳이라면 굳이 이색적인 간판을 내걸지 않아도 손님들이 모여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제 막 개업한 곳이라면, 짧고도 강력하게 어필(Appeal)할 수 있는 이름을 간판에 내걸어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좀 재미있고 튀는 이름으로 하면, 자칫 유치해 지기 십상이고, 그렇다고 무난한 이름으로 가자니, 이미 같은 상호로 전국에 수백 개가 있어 ‘차별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요즘 이 간판과 관련해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또 있으니, 바로 범여권 신당(新黨)의 명칭이다. 일명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이라 하니, 한번 보고는 부르기도 쉽지 않다.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 대비해 반(反)한나라당 세력을 몽땅 끌어 모아 신장개업(新裝開業)했다는데, 여러 세력이 모였다는 뜻의 ‘대통합’에, 참여한 시민단체 이름까지 더해 기찻길 같은 이런 이름이 나온 모양이다. 어쨌든 차후에 부르기 쉬운 정식명칭을 따로 정할 거라고 하지만, 이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당장 걱정되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정당(政堂)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정권획득을 목적으로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결사’라고 나와 있다. 쉽게 말해 비슷한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정권을 잡겠다고 모인 단체라는 건데, 대통합신당의 깃발 아래 모인 사람들은 이 요건 충족에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그 성분을 보아하니, 과거 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노무현대통령 친위세력과 그 열린우리당이 실패했다며 떠났던 세력, 그리고 그들의 모체(母體)였던 민주당 일부세력과 심지어 보수진영인 한나라당과 자민련에 몸담았던 사람들까지 같은 간판 아래 모였기 때문이다. 겉보기엔 일견 ‘대통합(大統合)’을 이룬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물과 기름처럼 뒤섞이기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현재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를 달리는 한나라당에 맞서, 대선승리라는 ‘동일한’ 목표아래 모였다고 하지만, 이들의 실체가 20여명도 넘는 대선 예비후보들의 야합(野合)이라는 의심은 괜한 것이 아니다.
반(反)한나라당 세력이 뭉치면 현재 여론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출마 선언한 후보들 모두 5%미만의 저조한 지지율을 보이고 있으니,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에 너도나도 몰려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잘되면 ‘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도 없잖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현재 후보들 중 경선을 통해 대선후보가 한명으로 결정되면, 나머지 세력들은 남의 집에 들어와 있는 듯 불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 이념적 구심력(求心力) 없이 모였기 때문이다.
또한 만약 대선에서 승리하고 정권을 잡았다 한들, 세부 정책결정 과정에서 그 이념의 차이를 극복하고 한 목소리를 내기는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 때만 해도 탄핵을 주도했던 세력과 울고 불며 국회표결을 저지했던 세력이 함께 하고 있는가 하면, 한미FTA 문제에 유유히 찬성표를 던진 세력과, ‘단식투쟁’까지 벌여가며 반대한 세력도 한 지붕 아래 모여 있으니, 이들이 집권할 경우, 정권말까지 정당 자체가 유지될지도 걱정이라는 것이다. 한 순간 누군가 박차고 나간다면, 또 다시 간판을 내려야 할지 모르는 씁쓸한 사태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정치(政治)’라는 것은 국민들에게 ‘희망(希望)’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적어도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을 것이다’라는 기대와 희망이 있어야 국민들도 자발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지 않겠는가? “민주”, “대통합”등 이름만 그럴듯하게 포장한 채, 속은 “그 밥에 그 나물”이라면, 이는 ‘희망’보다는 ‘기망’이라 할 것이다. 서로의 이념적 차이를 극복할 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이, 한자리 해보겠다고 모인 것이라면, ‘대통합’이라는 거창한 명분도 결국 ‘야합(野合)’이라는 비난 속에 증발해 버릴 것이다.
원래 상점이 잘되려면 ‘간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랜 전통과 남다른 솜씨가 있어 단골들의 취향을 사로잡거나, 남다른 ‘차별성’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것이다. 권력 욕심에 뚜렷한 ‘대의명분(大義名分)’도 없이 이사람 저사람 모여 봤자, 계산이 맞지 않으면 한 순간에 모래알처럼 흩어진다는 것은 지난 역사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 중요한 것을 구별하는 혜안(慧眼)을 가지고 아무쪼록 국민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성공한 정당이 되길 바란다.[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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