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태가 지난달 20일에 발생해 20여일이 다됐지만 인질 석방을 위한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장기화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충격적이다.
대통령 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 국민 모두가 인질에 대한 단장(斷腸)의 아픔에 젖어 있다. 탈레반 무장 세력에 인질로 잡혀 있는 21명의 한국 젊은이의 생사가 절박한 까닭이다.
단장(斷란腸)무엇인가? 그것은 창자가 끊어질 정도의 심한 슬픔이나 아픔을 뜻한다. 이 말은 ‘세설신어(世說新語)’라는 책에 나오는 고사성어(故事成語)다. 진(晉)나라의 환온(桓溫)이 촉(蜀)나라로 가는 도중 삼협(三峽)을 지났을 때의 일이다.
부하가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잡아왔다. 어미 원숭이가 뒤를 쫓아왔지만 배는 이미 떠난 뒤였다. 그래도 어미 원숭이는 기슭을 따라 끝까지 쫓아왔다. 100리쯤 지나 배가 기슭에 닿자 어미 원숭이가 배로 뛰어들더니 그대로 죽고 말았다.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았더니 창자가 모두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지극한 모성애(母性愛)다.
모성(母性)을 감동 깊게 보여 준 어미 원숭이 때문인지 역대의 중국 시인묵객들은 그 울음소리를 듣고 슬픔을 떠올린다. 그래서 ‘원소(猿嘯)’라는 단어가 옛 시인들의 글에 등장한다.
탈레반에 잡힌 한국인 인질들의 부모가 그 심정일 것이다. 저들의 총에 쓰러지는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애를 끊는 듯한 그 슬픔이 아니겠는가. 슬픔의 극한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우리는 정부 대표가 추진 중인 탈레반 측과의 대면(對面) 협상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탈레반과의 직접 접촉으로 협상 시한을 계속 연장하면서 시간을 버는 것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탈레반 포로는 우리 수중에 있지 않다. 따라서 아프가니스탄의 협력이 필요하다. 아프가니스탄을 설득할 카드가 우리에게는 없고, 미국에는 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열려 있는 또 하나의 길은 5~6일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서 개최하는 부시 미국 대통령과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다. 천만 다행이다.
미국의 공격으로 삶의 기반을 상실한 아프가니스탄의 급진 무장세력은 미국을 상대로 힘겨운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내부 결속을 다지고 공격의 정당성을 포장하기 위해 ‘이슬람’이란 명분을 곧잘 내세운다.
그러나 그들의 무차별적인 폭력은 이슬람 정신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이슬람 대중의 지지 기반을 거의 상실했다. 테러집단은 이슬람 전체 세계에서 5%도 채 안 되는 규모다.
온 국민의 애를 끊게 만든 이번 인질 사태는 아프간 사람들을 도우러 갔던 우리 젊은이들의 잘못이 아니고 교회 탓도, 미국 책임도 아니다. 이슬람 역시 주류는 민주주의(民主主義)의 원칙을 받아들인 지 오래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길어지고 인질 2명이 살해되자 일부 세력들은 그 책임을 미국에 돌리려고 시도하기 시작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이란 시민단체가 “미국이 비극 불렀다”며 촛불시위를 하고, 참여연대는 “협상이 안 되는 것은 미국의 방관 때문”이라는 성명을 냈다.
물론 미국 정부가 탈레반 죄수를 풀어주는 데 선뜻 응하리라고는 보기 힘들다. 미국 정부는 미국인이 납치돼도 테러범의 요구를 거부해 왔다. 예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라크에서만 미국인 인질 6명이 미국 정부의 협상 거부 속에 살해됐다. 현재도 10여명의 미국인 인질이 생사 불명이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의 사태를 반미(反美) 선동의 호기(好機)로 써먹으려 해서는 안 된다. 인질의 귀환에 아무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하루 속히 코란 5장 32절을 보아야 한다. “타인과 세상에 아무 해악을 끼치지 아니한 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살해하는 것은 모든 인류를 살해하는 것과 같으며, 또한 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모든 인류를 구제하는 것과 같다”고 적혀 있는 까닭이다. 무하마드의 가르침을 잊었는가?
정부는 반드시 탈레반과 직접 접촉을 유지하면서 인질의 추가 희생을 막고,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모든 외교 역랑을 쏟아 부어 부시 대통령과 카르자이 대통령의 마음을 감동시켜야 한다. 조용히 성의를 다해야 한다. '테러세력과의 비타협‘을 비롯한 어떠한 원칙도 생명에 우선할 수는 없다.
지난해 미국 여성 언론인과 미국 수용소에 억류돼 있던 이라크 여성 5명을 맞바꿈으로써 인질 사태를 해결한 전례가 그것이다. 이번 우리 인질 사태도 이런 유연한 타협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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