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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틀 로열(Battle Royale)’ 사회 / 이승배<논설위원> |
2007년08월29일(W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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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로열(Battle Royale)'은 프로 레슬링 경기에서 재미로 만들어진 경기 규칙 가운데 하나로, 링 하나에 무제한 선수가 올라가 최후의 승자가 나올 때까지 싸우는 경기 규칙을 말한다. 때문에,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을 빗대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실제 일본에서는 ‘배틀로열’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이 출간되고 영화가 만들어 졌는데, 그 내용의 잔혹함으로 인해 국내 수입 개봉 시 많은 논란이 있었다.
영화 ‘배틀로열’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학생들이 벌이는 무한살육의 비극을 그려냈다. 가까운 미래의 일본에 실업자 1천만명, 등교거부 학생 80만명, 교내 폭력으로 순직한 교사가 1천200명이라는 통계에 놀란 일본 정부는 ‘배틀로열 법(法)’이라는 강력한 법률을 제정한다.
이 법은 전국에서 일 년에 중학교 한 학급씩 무작위로 선발, 무인도에서 3일 동안 최후의 한 사람이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를 죽이게 한다는 끔찍한 내용이다.
일본의 교육 관료와 통치자들은 이 법을 통해 약육강식의 세계화 속에서 일본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법을 어린 세대들에게 체득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사실 영화를 보고 느꼈던 강한 충격은 최후의 승자가 나올 때까지 같은 반 학우들을 서로 죽여야 한다는 비정한 상황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는 이미 레슬링 경기장의 링 위에서처럼, 상대를 짓밟고 올라가야만 생존할 수 있는 배틀로열 규칙이 지배하고 있으며, 영화처럼 학교에서도 동료 학우들을 죽이는 장면만 성적에 따른 줄 세우기와 왕따 등으로 바뀐 채, 작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억압되고 닫힌 사회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릇 학교란 인성을 교육하는 곳이지, 대학진학을 위한 입시 경기장이 아니다. 하지만, 특목고 입학 붐으로 중학생 때부터 시작된 경쟁은, 마치 명문대학만 나오면 한순간에 인생이 바뀔 거라는 착각 속에, 우리 고등학생들을 피 튀기는 링 위에 올려놓았다.
명문대학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모한 신뢰와 기대감에 홀려버린 일부 학부모와 학생들은, 좋은 내신을 위해서라면 ‘어머니의 정보력과 아버지의 경제력’으로 표현되는 비정상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적군도 아군도 아닌 친구들과 고독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불행 속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단체생활을 통한 협동정신과 선의의 경쟁을 가르쳐야 할 학교가 현실보다 더 치열한 경쟁사회가 된 것이다.
대학 역시 ‘학문의 상아탑’은 옛말이다. 더 나은 삶, 더 나은 직장, 소위 ‘신이 내린 직장’에 이르기 위해선 역시 동료들과 일전을 치를 수밖에 없다. 높은 학점과 영어점수, 인턴경력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얻기 위해서는, 인생과 사회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간도 없이, 학생들은 또 다시 경기장 속으로 뛰어 들어야만 한다. 기회는 오직 최후의 승자에게만 오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사회에 배출된 한 인간은, 처절한 경쟁의 승리자이며, 동시에 패배자일 수밖에 없다. 끊임없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동안 본인과 우리 사회가 입었을 상처의 크기가 작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사회적 존재로써 건전한 인격을 갖추기도 전에, 또 다시 경쟁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하고, 동료이자 경쟁자에 대한 신뢰상실, 경계심과 조바심 속에서 살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모든 분야에 승자가 되지 않는 한, 불행의 고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변화에 적응 못해 경쟁에서 쳐진 사람들 역시, 점점 설 곳을 잃게 된다. 집에서는 무능한 아버지로, 일터에서는 퇴직의 위협 속에 무시당하고 왕따를 당한다. 모두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하나 둘씩 도태될 때, 사회를 이루는 하부구조는 자연스레 붕괴하고, 소수의 상부만 남을 것이다. 사회 체제의 붕괴는 논리 필연적인 결과이다.
영화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 누구나 알고 있을 명쾌한 해답이, 우리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독의 자괴감 때문이 아닐까?
최근 대선 후보 경선을 치른 한나라당에서도 배틀로열 규칙의 무서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같은 소속 정당 후보끼리 ‘검증’의 칼날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로를 찌르고 짓밟는 동안, 지지 후보에 심리적으로 기댄 국민들은, 스포츠 경기를 보듯 상황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경쟁에서 지쳐버린 자신들의 삶에서 오는 피로를, 대선 후보경선이라는 대형 경기를 보면서, 대리만족으로 해소하려는 것이다.
이런 대중 심리는 ‘강자 의존적’ 성향으로 발전해,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했음은 물론,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 세력의 불모지였던 호남지역에서 터줏대감이던 민주당을 제치고 지지율 1위를 기록해 버린 이변을 일으켰다.
승자의 ‘덧셈정치 선언’과 패자의 ‘아름다운 승복’이 경선의 말미를 장식했지만, 본격적인 대선 체제로 당 조직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불협화음부터 들려온다. 승자 독식의 구조로는 화합이 곤란하다는 패자의 불만 때문이다. 원래부터 무시무시한 배틀로열 규칙에서는 패자가 설 곳은 없었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것이 배틀로열 규칙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제 패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리 무서운 배틀로열 규칙이라도, ‘아름다운 화합’을 열망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잠재울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한나라당의 분열 사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화합이라는 희망의 씨앗을 싹틔우기 위해선,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결국 패자가 설 곳은 승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양측의 지혜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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