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중인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 사방에서 거부당하고 있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8월 30일 전국 편집·보도국장 회의를 열고 긴급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유린하는 취재봉쇄 조치를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신문 방송 통신의 편집·보도국장은 시사(時事) 보도의 총책임자라는 점에서 대한민국 언론계가 노무현 정권의 언론 통제 정책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그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이렇게 한 목소리를 냈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대한변협은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기자들의 취재를 봉쇄하는 정부 조치를 강력히 비판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국무총리 훈령이 만들어져 헌법에 보장된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법치주의(法治主義)를 짓밟는 폭거라는 점에서 우리는 법률가단체의 결의문을 환영한다. 국제언론인협회(IPI) 세계신문협회(WAN) 세계편집인협회(WEF) 국제기자연맹(IFJ) 등 국제언론기구들도 일제히 유감을 표했다. 그들은 공무원들의 기자 접촉 제한과 상부 보고의무화 등은 국민에게 정보를 알려야 하는 언론의 역할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취재원 보호에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기자실에 대못질을 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전세계 민주국가의 기자들을 경악하게 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젠 우리 국민들도 머리를 흔들고 있다. 그것은 노 대통령과 정부가 전혀 승산 없는 싸움에 매달려 임기 말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실에 아무리 대못질을 한들 다음 정권에 가면 대못을 뽑고 원상회복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지 않은가? 그런데 왜 국민세금을 낭비해 가며 기자실 통폐합 공사를 강행하는 건가 묻고 싶다.
국내외의 비판과 우려에 대해서는 귀막고 눈 가리고 있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권력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정부와 언론의 관계가 이런 식으로 나빠지는 것은 양자 모두를 위해서나 국민과 국가와 우리 사회를 위해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단순한 기본권(基本權)의 시각에서 언론의 자유를 평가하던 시대는 지난 지 이미 오래다. 언론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가 숨쉬기 위해 불가결한 생명(生命)의 공기(空氣)에 해당한다. 생명에는 공기가 소중하다.
자유민주주의는 언론의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 자유언론제도를 통해 언론의 다양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언론의 다양성이 보장될 때 모든 국민은 다양한 정보를 얻어 주권 행사를 올바로 할 수 있다.
다양한 정보 속에서 정보의 취사선택을 통해 민주시민(民主市民)으로서 삶의 방향과 정책에 대한 판단과 투입(input)을 하게 된다. 국민의 알 권리가 언론의 자유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국민은 스스로 필요한 정보원에 접근하는 데 기술적 시간적 제약을 받는다. 따라서 언론기관의 보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도의 자유는 알 권리의 실현과 불가분의 연관성을 갖는 것이다. 보도의 자유는 취재의 자유와 취재원 묵비권을 핵심적(核心的)인 내용으로 한다.
취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국민이 알 필요가 있는 뉴스를 찾아서 기사로 보도할 수 있다. 취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취재원을 보호할 필요가 있고 취재원 묵비권도 보장되어야 한다. 문제의 총리 훈령 제11조 1항은 ‘공무원의 언론 취재 지원은 홍보담당 부서와 협의해야 한다’, 2항은 ‘(전략)사후에 정책홍보부서에 통보한다’고 돼있다. 이 규정이 지금 언론과 갈등을 빚고 있는 취재 보도 원천봉쇄의 근거로 삼고 있는 독소조항인 것이다.
홍보처는 심지어 각 부처의 기자실 폐쇄에 협조하면 마치 언론에 시혜라도 베풀 것처럼 이 조항에 대한 ‘협상안’까지 내놓았다. 언론 자유를 밀고 당기는 협상으로 보고 있다. 어림도 없는 소리다. 총리 훈령 몇 자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게 어불성설이 아닌가 싶다.
언론 자유는 원래부터 국민의 것이다. 정부가 사탕 주듯 나눠 주는 것이 아니다. 이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아니 자유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가 언론 자유를 ‘불가침(不可侵) 권리(權利)’로 못박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런 총리 훈령은 당연히 위헌(違憲)이다.
노무현 정권은 민주개혁정권을 표방하면서 언론 통제를 강화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노 대통령 스스로 인정한 대로 좌파적 정부라고 하더라도 좌파 이데올로기의 확산과 좌파적인 정책을 고착화하기 위한 언론 통제로서는 방법이 너무 지나치다. 헌법재판소는 하루 속히 이 문제를 시급한 사안으로 다루어 분명하게 헌법적(憲法的)인 평가를 내려야 한다. 기본권 침해의 확산을 막는 결정을 해서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헌법재판소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는 하루 속히 이 문제를 시급한 사안으로 인식해 기자실 통폐합 등 정부 조치가 철회되도록 해야 한다. 참여 정부가 민주주의(民主主義)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 나라는 물론,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까닭이다.
노 대통령은 언론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통령의 길과 언론의 길이 어떤 경우에도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 대통령과 언론과의 관계는 유감스럽게 적대적인 때가 많다. 그렇게 된 책임은 대통령에게도 있고, 언론에도 있다고 본다.
그 어떤 권력도 언론의 길을 바꿀 수는 없다. 지금은 폭넓게 의견을 들으며 잘못 묶은 매듭을 스스로 풀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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