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과 측근이 내심(內心)을 드러내고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노 대통령은 평화체제 문제가 ‘핵심 의제’라고 단언했고,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은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어떻게’다. 가장 큰 장애가 북한의 핵이다. 지난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종전(終戰)선언의 전제조건으로 ‘검증 가능한 비핵화(非核化)’를 제시한 것도 그래서다. 노 대통령은 7일 시드니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체제나 종전선언에 대해 분명히 말하라고 다그쳤다.
사실은 노 대통령보다 먼저 발언한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새로운 안보체제(security arrangement)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그걸 통역이 빠뜨렸다.
노 대통령의 성화에 부시 대통령은 한국전쟁을 끝내는 평화조약을 체결할 것인가는 김정일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미국 측 통역은 ‘평화조약 서명’이라는 말을 ‘평화체제 제안’으로 옮겼다.
영어를 못 들은 노 대통령은 그 말이 그 말이라면서 이번에는 김정일까지 끌어들여 “김위원장이나 한국 국민들은 그 얘기를 듣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짜증을 냈다. “더 이상 어떻게 분명히….”
청와대와 백악관은 이 사건을 통역 실수로 일어난 해프닝으로 해명했다. 대부분의 언론도 수긍했다.
평화체제 구축은 잔여 임기 5개월의 대통령이 밀어붙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평화체제가 되려면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 정전협정 당사국은 미국 중국 북한, 그리고 1997년 12월~1999년 2월 한반도 평화 4자회담이 네 차례 열리면서 실질적인 당사국으로 인정받고 있는 한국 등 4자다. 남북한이 주도하고 미중(美中)이 보장하는 ‘2+2’해법이 대안의 하나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실제 협상에서 이대로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미중은 물론 일본과 러시아의 이해관계도 얽혀 있는 까닭이다.
노 대통령의 평화체제 구상은 주무부서인 외교통상부의 견해와도 결이 다르다. 송민순 외교부 장관은 “평화는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오지 않는다”며 “갑자기 종전선언을 하면 평화가 없는 상태에서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당연히 해야 할 걱정이다.
지금의 평화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은 유엔군 사령부와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된 혼란을 초래할 뿐 아니라,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핵 해결 없는 평화선언은 미국과의 충돌코스이기도 한다.
문 실장이 NLL 논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북한에 나서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세기가 넘은 실질적 해상경계선(海上境界線)을 국민의 의사(意思) 수렴 없이 정상회담에서 논의한다는 것은 국민 무시 행위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대사도 남북 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을 실현시키려는 노력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의 중요성이 희석될까 걱정이라는 논평을 보내 왔다. 연내에 ‘핵 불능화’가 성사돼도 폐기까지는 요원하리라고 본다.
지금 우리의 대북 평화정책은 북한의 핵 포기 과정을 유도하고 확실하게 매듭짓는 데 맞춰져야 한다. 북한 핵 불능화를 곧 북한 핵 해결로 기정사실화할 경우 한반도의 평화를 오히려 위협하는 평화공세가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10월 남북정상회담에 다음 몇 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 그것은 노파심에서다.
첫째, 노 대통령은 평화협정 체결을 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혹만 붙인 꼴이 되는 까닭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비핵화 그 자체가 보증하는 것이다.
둘째, 노 대통령은 NLL 문제 논의를 하지 말아야 한다. NLL 양보로 실질적 영토포기가 될 위험이 있는 까닭이다.
셋째, 노 대통령은 반드시 납북자 및 국군포로의 송환, 북 ‘핵 불능화’ 문제만을 논의해야 한다. 우리 국민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이제부터라도 욕심(慾心)을 부려서는 안 된다. 다음 정권에서도 남북대화와 평화체제 모색은 계속된다.
국민의 부담이 될 것은 줄이고, 대화의 지속가능성은 살려 놓는 선에서 회담을 마치고 돌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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