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9일 ‘개헌 카드’를 들고 나와 충격적이다. 대국민 담화를 통해 대통령 4년 연임제를 도입하고,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개헌을 발의하겠다고 선언했다. 노 대통령은 2~3월쯤 개헌안을 발의할 예정이며, 4~5월쯤 국민투표가 실시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지금 개헌 이슈를 들고 나오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 개헌은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헌은 헌정질서의 기초와 관련된 중대사다. 그래서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의 동의가 절대적인 필요조건인 것이다. 또 국민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대통령이 돌연 개헌 제안을 하는 것은 국민의 의심을 받을 일이 아닐 수 없다.
개헌이야말로 ‘최고의 정치쟁점’이다. 일단 논쟁이 시작되면 모든 의제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사안이다.
대선을 앞두고 산적한 국정 현안과 개혁 과제, 민생문제가 정치논리에 밀려 표류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개헌 문제까지 가세할 경우 여야의 극한 대립과 그로 인한 민심의 이반 등으로 정치사회가 또다시 첨예한 갈등을 빚을 것이 뻔하다.
코리아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의 주장에 ‘그렇다(26.7%)’보다 ‘아니다(60.6%)’가 2배 이상 많았다. 이런 국민의 여론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대통령이 진정 나라와 국민을 생각한다면 당장이라도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FTA만 제때 타결돼도 그동안의 실점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다. 법치(法治)만 확립해도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높아져 일자리 9만개가 더 생긴다.
대통령은 하루 속히 개헌카드를 거둬 들여야 한다. 눈 밝은 국민은 개헌을 제안한 대통령의 정략적 의도를 눈치 채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 청와대 당국은 민심을 잘 파악해 무리하게 개헌을 추진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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