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통하지 않으면 기업도 하기 어렵다는 푸념이 많다. 경제 권부의 세도가 워낙 등등한 탓이다.
그중에서도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관 공직자들은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할 정도로 기업인들에겐 ‘하느님’이다. 기업인들이 이들 앞에 줄을 서거나 ‘방탄 모임’모임을만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바쁜 기업인들이 대학원 최고과정이나 각종 사교모임에 들어가 인맥 넓히기에 안간힘을 쓰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신용금고 인수를 위한 불법로비 혐의로 구속된 김흥주 삼주산업(전 그레이스백화점) 회장은 방탄 모임을 직접 만든 경우다.
원래는 보육원 양로원 봉사활동을 하자는 뜻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형제들의 모임’으로 이름 붙였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45명의 회원들은 서로 ‘형님’ ‘아우’로 부르기 시작했고, 어느 사이에 ‘형제 모임’이란 약칭을 쓰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김 씨의 로비창구와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2인자인 현직 부원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구속된 김중회 금감원 부원장은 김흥주 삼주산업 회장에게 금감원 내부 자료를 건네주는 등 그의 골드상호신용금고 인수를 돕고 2억3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신상식 전 금감원 광주지원장도 김씨의 대출을 알선한 혐의로 함께 구속됐다. 금융회사의 불법·비리를 감독해야 할 위치에 있는 공직자들이 스스로 직무와 관련해 이런 비리의 주인공이 된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지금까지 상황만으로도 금감원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금감원 인사들이 서울서부지법에 제출한 탄원서는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금감원 임직원 1300명은 ‘김중회 부원장을 존경하는 직원들의 모임’이라는 탄원서에서 “평소 강직했던 김 부원장이 금품수수를 했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며 “그동안 각종 게이트가 있을 때마다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결국 아무런 혐의가 없는 것으로 종결됐다”고 밝혔다.
사정을 백번 이해해도, 수사 중인 사건에 영향을 줄 만한 행동을 공적 기관이, 그것도 집단으로 하는 것은 옳지 못한 처사다. 삼주산업 김흥주 회장의 전방위 로비의혹 사건은 김대중 정부 시절 정관계 거물급이 개입한 권력형 비리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이근영 전 금융감독원장을 조사한 데 이어 한광옥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조사했다. 사건은 2000년 ‘정현준 게이트’ 연루 의혹을 받았던 장래찬(당시 금감원 국장) 씨의 자살사건 직후 발생했다는 점에서 폭발성이 있다.
한 씨는 1999년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억대에 이르는 사무실 보증금과 임차료 대납을 김 씨에게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파워 그룹이 관련된 권력형 비리의 전형이다.
한 씨가 억대의 금품을 받고 그 대가로 김 회장에게 이권을 제공했는지 여부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권 씨와 한 씨는 다른 비리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수감생활을 하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데 이번에 또 다른 비리가 드러났다. 도대체 비리의 끝이 어디인가.
6년 전 사건이 이제야 실체를 드러낸다는 점만으로도 많은 국민은 의아해 하고 있다. 어떻게 그런 사건이 그동안 덮여 있었는지, 과연 진실은 무엇인지, 괜한 희생양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등등 아직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의혹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검찰은 철저히 수사해 진실을 분명하게 가리기를 바란다.
대통령이 나서서 ‘정부개혁만은 자랑하고 싶다’던 이 나라가 공직사회의 실상이 사실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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