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국회 청문회와 임명동의 절차를 마치고 어제 임명장을 받았다. 이로써 ‘전효숙 파동’으로 야기된 4개월여의 헌재소장 공백 사태도 마침표를 찍었다. 이런 시기에 헌재소장을 맡은 이 소장의 어깨는 무겁다. 헌재의 위상을 회복하고 정치적 외압의 바람막이 역할을 해야 하는 책무까지 떠맡은 것이다.
전효숙 파동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과욕에서 비롯됐다. 3년간 헌법재판관으로 재직한 전씨를 사퇴시킨 뒤 6년 임기의 헌재소장에 임명하려 했다.
이것이 “헌재소장은 헌법재판관 중에서 임명한다”는 헌법 조항을 위반했다는 논란을 일으켰고, 결국 전씨는 중도하차해야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진 데는 대통령의 책임도 있지만, 헌재 연구관들이 “재판관직을 사퇴하는 것이 맞다”고 건의한 탓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추락한 헌재의 위상을 이 소장이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특히 지금은 헌재의 정치적 중립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기다. 이념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지고 여야의 대립이 격화하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모조리 헌재로 끌고 가는 경향이 있다. 오죽했으면 전임 윤영철 소장이 퇴임사에서 “이념과 이해의 갈등이 소용돌이치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것 같았다”고 했겠는가. 더구나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데다 ‘4년 연임제 개헌’추진을 둘러싼 논란으로 위헌 소송이 범람할 가능성이 있다.
개정 사립학교법과 세금 폭탄으로 불리는 종합부동산세 등도 헌재의 위헌 심판대에 올라 있다. 17대 국회에서 쏟아 낸 법률 중에는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에 반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이를 가려내 시정함으로써 헌법 정신을 수호할 무거운 책무가 헌법재판소에 부여돼 있다. ‘거친 항해’를 앞두고 이 소장은 철저한 정치적 중립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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