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변화를 선택했다. 한국도 변화를 선택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현재 미국에서 변화의 상징이라면 이명박 대통령은 1년 전 한국에서 변화의 심벌이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악재가 겹쳐 이명박 대통령이 지녔던 변화의 이미지가 퇴색했을 뿐이다. 이른바 날로 새롭고 또 날로 새롭다는 ‘일신 우 일신(日新 又 日新)’ 이 그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생활을 해야 한다. 그것이 순천(順天)하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순천을 하려면 먼저 민심에 순응해야 한다. 물론 오바마 당선인과 이 대통령이 추구하는 변화의 방향은 다르다. 그 점에서 한미 간에 불협화음이 생겨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런 부조화는 두 사람의 등장 배경이 아주 판이해서 생겨난 것이다. 오바마는 30여 년간 지속된 보수시대의 반작용으로 나타났고, 이 대통령은 10년간의 진보시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출현했다. 어쨌든 두 사람은 각자가 처한 조건에서 ‘변화’를 내걸고 집권에 성공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내년 1월 취임하는 버락 오바마 차기 미국 대통령과 잔여임기 4년을 함께하게 된다. 동맹국 정상끼리 임기가 겹친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좋다. 서로를 잘 알게 될수록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쌓이면 제반 현안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意氣投合))할 수만 있다면 향후 4년은 한미 관계가 더욱 안정적일 것이다.
중국 후한(後漢)의 시조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B·C. 6~A·D. 57)의 이야기다. 천하를 노리고 군사를 일으킨 유수에게 등우(鄧禹)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유수는 “나를 섬겨 벼슬을 하고 싶어 오셨소?”라고 물었다. 그러자 등우는 “아닙니다. 당신이 천하를 얻게 되는 날에 저도 견마의 공이라도 세워 이름을 청사에 남기고 싶을 뿐입니다”라고 답했다. 이는 곧 자신이 광무제가 천하를 통일하는 과정에 기여해 역사에 이름을 남기면 족할 뿐 결코 벼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말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이를 몸소 실천한 사람이 바로 유방(劉邦)을 도와 한나라를 개국한 후 모든 벼슬에서 물러나서 초야에 묻혀 살았던 장양(張良)이었다.
하지만 역사에서 이런 인물들을 찾기가 어렵다. 그것은 목숨을 걸고 공을 세운 뒤에 그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물러난다는 게 어려운 까닭이다.
한편 천하를 얻은 군주(君主)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공신들을 어떻게 대우해 주는가 하는 문제 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군주는 천하를 얻는 과정에서 헌신적인 노력을 해 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성공하면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약속을 하게 된다. 공신들 또한 이런 보답을 기대한다.
문제는 천하를 얻는 과정에서 하게 되는 이런 약속들을 모두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다. 천하를 놓고 다투는 것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상황이므로 천하를 노리는 사람들은 정말 자신이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지 잘 생각해 보지 않고 약속을 해 주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유색인종이라는 엄청난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루어 낸 개인적인 쾌거이자 미국 국민들의 쾌거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런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양한 계층의 지지를 얻어서 당선됐음으로 빚을 갚아야 할 공신들이 특히 많을 것이다. 또한 8년간 정권을 잡지 못 했던 민주당으로서는 이 승리의 날을 기다렸던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세계의 경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공신들에게 한 자리씩 나누어 주고 지지층의 세금은 내리고 혜택을 올려 주다 보면 제대로 일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연 오바마 당선인이 이런 공신들과 지지계층의 요구를 어떻게 처리해 나갈지 관심있게 지켜보아야 한다.
거듭되는 경제실정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자신이 가장 잘 아니까 직접 챙기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선도 신뢰회복을 어렵게 만든다. 특히 이 대통령이 고환율 정책을 비롯한 각종 경제정책 실패의 장본인인 강모 장관에 대한 문책 여론을 철저히 외면함으로써 과연 경제 위기를 제대로 타개할 식견과 능력을 갖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MB 정부는 친기업 반노동의 편협한 태도를 버리고 취약계층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
미국의 민주당은 오바마콘(오바마를 지지하는 공화당원)을 만들어냈지만 한국의 민주당은 10%대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진보는 동반성장과 빈곤퇴치를 내용으로 하는 ‘해밀턴 프로젝트’ 같은 정책대안을 준비했지만 한국의 진보는 국민에게 믿음직한 대안세력으로 여길 만한 정책을 내놓은 적이 없다.
더구나 한국의 진보에는 북한 핵과 인권에 눈을 감는 세력이 숨어 있다. 이 점에서 오바마 정부가 북한 인권문제를 들고 나올 경우 미국과 한국의 진보 사이에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 오바마 정부가 한미 FTA를 수용할 경우 이런 갈등의 여지는 커진다.
오바마 당선인과 이명박 대통령은 많은 공신들의 도움을 갚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란 바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당선인과 대통령은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중용(中庸)의 도(道)를 가지고 중용적(中庸的) 정치를 해야 한다.
정부 당국은 오바마의 당선을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해석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 갈등의 소지를 알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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