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8년 영국교회 성직자였던 토마스 말서스는 ‘인구론’에서 ‘세계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25년마다 두 배가 되지만 식량의 증가는 산술 서열을 따르므로 큰 문제’라고 하였다. 그러나 말서스의 이 예언은 빗나갔고 지금은 120억 명까지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곡물 잠재량만으로도 전 세계의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의 곡물생산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전 세계적 식량과잉의 시대에 세계 인구의 반은 굶주린다고 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06년 10월 로마에서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2005년 기아로 인한 희생자 수를 집계했다. 2005년 기준으로 5초에 1명씩 10세 미만의 아동이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3분에 1명꼴로 비타민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한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5천만명이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상황은 특히 열악한데 현재 전체 인구의 36%가 굶주림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 북한의 상황도 절망적이다. 2004년의 통계로 15세 미만 아동의 37%가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동남아시아나 남미의 일부도 문제가 아주 심각한데 필리핀 도시 빈민촌이나 브라질 도시 변두리에는 음식쓰레기로 연명하는 사람이 30만명 이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계 기아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러면 왜 이와 같은 상황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을까? 유엔기구 아동구호 식량문제에 관련된 일을 처리하고, 스위스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지글러 교수의 분석과 해석은 독창적이다.
지글러는 여러 각도에서 해석한다. 칠레에서 일어난 ‘아옌데’의 비극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한다. 아엔데 정부는 분유를 무상으로 배급하여 성공하였는데 이 것이 전 남미로 확산될 것을 두려워한 다국적 기업인 ‘네슬레’가 압력을 작용하기 시작하였다고 본 것이다. 아주 예리한 지적이며 우리가 미처 몰랐던 부분이다. ‘상카라’의 비극도 같은 맥락에서 본다.
상카라는 서아프리카 사하라 남단에 위치한 작은 국가인 부루키나파소의 젊은 장교였는데 혁명을 일으켜 대통령이 되었고 개혁 정치를 했다. 상카라에 의해 인두세가 폐지되고 토지의 국유화로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해질 찰나였다. 프랑스의 일부세력은 이것을 두려워했고 결국 상카라는 혁명동지에 의해 암살당한다. 상카라가 성공했다면 전 아프리카로 확산되어 식량 자급자족이 가능했을 것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기아가 계속 발생하는 구조적 병폐는 국가 내부의 이유로 발생하기도 하고, 국제적 관계 혹은 식민지 유산에서 발생하기도 하며, 때로는 국제 기구를 둘러싼 권력관계에 의해서 오히려 재생산되기도 한다고 지글러는 보고 있다. 또 장기간에 걸쳐 식량 공급이 지체되는 구조적 기아나 돌발적이고 급격한 일과성의 경제적 위기로 발생하는 경제적 기아까지도 인재로 본다.
‘워싱턴 합의’도 기아 문제의 해결을 가로 막는데 한 몫 한다고 보고 있다. 유럽 연합의 식량 과잉 생산과 덤핑 정책때문에 싼 가격에 남반구에 수출되는 농산물은 자생력을 상실한다고 본 것도 새로운 지적이다. 브라질 동북부 기아의 원인을 모든 물품을 독점하고 있는 살인적인 금융과두제의 횡포로 본 것도 신선하다.
지구상에서 가난한 나라의 사람은 죽어 가는데 부유한 나라의 소가 곡식을 대량 먹어치우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전 세계 옥수수 생산의 4분의 1인 50만 톤을 소가 먹는 것이다. 특히 미국소의 경우 ‘피드롯’이라는 온도 조절이 되는 시설에서 자동화 시스템에 의해 곡물이 먹이로 공급된다. 시카고 곡물거래소의 다국적 기업의 투기꾼들도 곡물 가격을 좌지우지 하면서 기아를 확대 재생산한다.
세계식량계획이나 많은 단체들이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한계를 절감한 지글러는 서서히 변하는 공공의식에서 희망을 찾는다.
수천만 명을 기아로 사망하게 하고 수억 명을 만성적 영양실조에 시달리게 하는 주범이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 경제 질서라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명확하게 인식해 가는데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기아 문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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