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은행권에서 되돌아온 41조원의 단기자금 중 13조원을 회수했다고 한다. 기업과 가계가 돈 가뭄으로 아우성을 치는 것과는 정반대다.
한은이 돈을 넘치도록 풀어도 시중에 흘러들지 않은 채 은행권만 맴돌다 역류하는 이런 ‘돈맥경화’ 현상은 그만큼 신용경색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세계 각국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고민이지만, 이렇게 중간에서 꽉 막힌 돈 흐름을 뚫지 않고서는 아무리 금리를 내리고 유동성을 쏟아부어도 전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이 문제를 풀려면 복합적 처방이 불가피하다. 우선 은행들의 기초체력을 올려주는 게 급선무다. 내년 1월에 20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키로 함으로써 3단계 은행자본 확충 방안 중 2단계에 진입하게 된다. 그러나 무늬만의 자본 확충이 아니라 실질적인 자기자본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이제 남은 일은 은행들이 경제위기 극복의 전면에 나서는 것뿐이다. 그동안 은행들은 기업의 잠재 부실과 그로 인한 자기자본 비율 하락에 대한 우려 때문에 움츠러들었던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신용경색 현상이 빚어지고, 아무리 기준금리를 내려도 시중금리가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염려를 접고 시중자금의 중개라는 은행 본연의 기능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은행은 무작정 돈을 움켜쥐고 버티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기업을 살리고 경제를 살리는 적극적인 역할을 해내야 한다.
물론 회생 가능성을 따지지 않고 마구잡이로 돈을 대주라는 얘기가 아니다. 옥석을 가리는 기업 구조조정 작업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다만 은행이 보다 적극적으로 자금 공급에 앞장서라는 것이다. 그러자면 위기 타개를 위한 자금 지원과 구조조정 작업에 참여하는 공무원과 은행 임직원에 대한 면책 규정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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