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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환 추기경님이 남긴 선물 |
2009년02월24일(Tue) |
| 정기연<논설실장>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죽어서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그분의 이름과 정신을 선물로 남기고 떠난 사람들이 있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가진 자가 되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다가 죽어서 갈 때는 빈손으로 가고 모든 것을 남겨 두고 가는데, 남겨두고 간 그분의 유산과 정신은 후대 사란들에게 값진 선물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종교계 인물로 평생 우리 사회의 대표적 양심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했던 위대한 별인 김수환 추기경님이 노환으로 지난해 8월 29일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입원, 6개월 동안 투병생활을 한 끝에 지난 16일 6시12분 향년 87세로 선종했다.
종교계에서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지극히 낮은 자세로 사셨고 하느님의 사랑을 몸소 행동으로 보이셨던 김수환 추기경님은 나라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정신적 영도자로 일깨워 주었으며 마지막 가는 순간에도 육신의 일부인 안구를 기증해 두 사람의 시각장애자가 빛을 볼 수 있는 영광을 주고 가셨다.
마지막 남긴 말씀은 “고맙습니다” “사랑하세요” 였다. 우리민족의 빛과 희망이 되었던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에 온 국민이 애도하고 있다. 근래 한 지도자의 죽음이 이토록 큰 울림을 준 적이 있었던가! 김수환 추기경님을 추모하는 행렬은 길게 늘어서 차가운 날씨도 잊고 뜨거웠으며 질서를 지켰다.
장례기간 사흘 사이 40만 조문객이 김수환 추기경님의 유해가 안치된 서울 명동성당을 찾았다. 거기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좌와 우, 지역과 나이, 정치와 이념으로 가르던 내 편 네 편이 없었다. 사람들은 새벽 2~3시부터 모여들어 조문이 시작되는 새벽 6시엔 이미 3km 넘는 줄을 만들고 이 줄은 조문이 끝나는 자정까지 이어졌다. 영하 추위 속에 서너 시간씩 기다려야 하지만 그 흔한 실랑이나 고함, 새치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몸이 불편한 노인에겐 “앞으로 가시라”며 양보했다. 우리는 명절 귀성표나 아파트 청약 따위를 위해 긴 줄을 서 본 일은 있지만 이처럼 자기 이익을 초월해 한마음으로 순수한 줄을 만든 적이 없다. 살아서 사랑과 희생, 나눔을 말과 행동으로 가르쳐 준 김수환 추기경님은 더 큰 가르침을 남은 이들에게 주고 갔다. 지혜로운 사회는 한 시대를 대표한 위인의 죽음을 통해 앞 시대를 정리하고 다음 시대를 준비한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사제로 서품된 1951년부터 선종한 2009년까지 58년 세월은 전쟁과 폐허·분단·독재·산업화·민주화·분열까지 시련과 성취와 고뇌가 응축된 대한민국 역사 그 자체였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이 어려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을 어미닭처럼 품어 안고서 “참아라. 고통에는 끝이 있다”고 일관되게 얘기하며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줬다.
전국 각지에서 김수환 추기경님을 조문하러 내달아오는 발걸음들은 대한민국을 지탱해온 한 정신의 소멸을 아쉬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유산에서 다음 시대를 열어갈 새 소명을 발견하고 구체화하는 노력으로 승화돼야 한다. 우리 사회는 개인과 공동체의 선진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착, 인류 공동발전 기여처럼 감당하고 해결해야 할 숱한 숙제를 남겨놓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자신의 묘를 일반 성직자와 똑같은 크기로 하고 평범한 삼나무 관을 써서 검소하게 하라고 당부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안구(眼球)를 기증해 앞 못 보는 두 사람이 새로운 빛을 찾는 것을 보고 자기 신체 일부를 내놓기로 약속하는 시민들이 줄을 잇는 등 희미하던 장기기증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다. 수(數)와 힘의 논리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조용한 혁명이 이미 우리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자신의 부재(不在)를 통해 더 큰 존재를 드러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진정 달라질 수 있다면 이는 김수환 추기경님이 남긴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정직하고 솔직하며, 가난하고 소외 된 자들에 대한 사랑, 빈민막사 찾기, 독재정권에 대한 항거, 정부에 대한 바른 소리. 민주화 버팀목이셨고, 유모어의 소탈함, 어린애처럼 해맑은 미소, 국민을 위한 봉사와 사랑은 온 국민의 가슴속에 영원한 선물로 남아 있다.
죽음은 슬픔속의 내세에 대한 희망은 있어도, 죽음의 비정한 현실은 죽음의 인생이 덧없고 허망하며 이별이란 슬픔을 안겨 준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유해는 지난 20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 성직자 묘역에 온 국민이 애도하며 지켜보는 가운데 안장되었다. 죽음이 새로운 삶이란 기독교적 부활신앙은 두렵고 엄청난 고통의 죽음이 “부활이 생명이니 나를 따른 자는 영원히 사는 것이다.
죽음은 영원한 삶의 문턱이다”라는 기독교적 믿음에서 김수한 추기경님의 선종이 하늘나라에서 새로운 행복한 삶에 축복이 있기를 기원하고 있다.
우리는 김수한 추기경님이 남기신 감사와 사랑, 용서와 화해의 정신적 유산으로 어려운 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해 가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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