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빠르게 계절의 춘색(春色)을 하나, 둘 드러내고 있다. 봄은 자연이 주는 축복의 계절로 마치 반가운 손님을 태우고 멀리서 귀항하는 배처럼 서서히 모습을 보이며 다가오고 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추워서 만은 아니다. 이는 화사한 꽃 소식과 함께 겨우내 움츠린 몸과 마음에 활력을 주기도 하지만 봄에는 새로운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죽음과도 같은 모진 추위를 이겨내고 돌아오는 생명의 전령들이 있기 때문이다. 희망의 봄이 있기에 겨울은 견딜만하고 추운 겨울이 있기에 봄은 아름답고 활기찬 계절로 다가오는 것 같다. 아름다운 봄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면 옛날 사람들이 봄에 대하여 느끼는 정서는 오늘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
동장군으로 불리는 지독한 추위와 싸우고 보니 추웠던 시절에 봄을 맞이하는 마음은 지금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하여 대문 양쪽에는 입춘대길이나 건양다경 같은 입춘첩을 붙이고 봄을 크게 환영하였던 것 같다.
봄을 단순히 절기에 따라 찾아오는 계절이 아니라 인간 만사 길흉화복에 영향을 미치는 신령한 존재나 화평의 화신(化身)이 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영접했던 것 같다. 옛날의 삶이 자연 의존적인 삶이었고 보면 자연의 봄을 그처럼 반갑게 맞아들이고 축복을 바라고 기다리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일찍이 찾아와 따스한 봄을 알리는 제비는 복을 주는 새로 남을 수 있었고 쏜살같이 하늘 위로 솟아오르며 우짖던 종달새 소리는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존재의 축복의 노래로 들렸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연을 등지고 사는 오늘의 시대에 느끼는 봄과 옛날에 느끼던 봄과는 비교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어찌하였든 봄은 자연이 내린 아름다운 축복과 희망의 계절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이러한 봄이 다른 때보다 더욱 기다려지는 것은 지난 추위를 잊고 봄과 함께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소설에는 ‘장사하는 사람과 정치하는 사람은 믿지 말라’는 말로 상인과 정치인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자연이 인간에게 복을 준다고 하지만 사람의 인화만은 못하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정치가 만능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정치에 희망을 걸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현실이 어려워도 봄이 어김없이 찾아 온 것을 보면 그러한 기원이 부질없는 것만은 아니다. 이제는 국태민안이라는 방을 대문이 아니라 가슴에 안고 따스한 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 올 봄은 바른 사회의 초석을 다지는 희망과 평화의 계절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는 않는다. 봄은 맹위를 떨치며 사람을 넘어뜨리려는 동장군과 싸워 이긴 사람에게 찾아오는 축복의 화신으로 온돌방에서 창 밖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봄이 아니라 변함없이 찾아오는 절기일 뿐이다.
옛사람이 보여준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봄을 맞이할 때 봄은 들에만 화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 아름다움을 전하는 계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올 봄은 긴 겨울을 멀리하고 푸른 생명이 존재하는 이상적 공간, 상춘(常春)지대가 있는 봄이었으면 좋겠다.
자연에는 상춘 지대가 없다고 하지만 우리사회에는 그러한 곳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희망의 봄이 되었으면 한다. 지금 봄을 기다리는 것은 모진 추위를 이기며 인고의 세월을 보냈기에 가능한 자연의 섭리인 것으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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