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6자회담 합의 이후 북한과 미국의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구축 등을 위한 관련국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22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초대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다음 달 초 뉴욕에서열리는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실무회의에 참석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를 환영해 마지 않는다. 오늘의 북한이 평북 영변 핵시설 폐쇄를 넘어 모든 핵 프로그램에 대한 신고와 핵 불능화 조치를 취할 경우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등의 북한 방문도 검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핵문제가 북한의 비핵화라는 선에서 해결됐다고 가정하는 경우, 우리의 상황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국외교는 처음부터 서독의 대동독 정책과 같이 북한을 인정하지 않는 원칙에서 출발해 1970년대에 와서 비로소 신축성을 보였던 것이다.
냉전 종식 이후부터는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전제로 하는 전략을 포기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국제적으로 더 깊은 고립의 골짜기로 빠져들어 갔다.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국제적 고립이 한국외교의 결과라고 볼 수는 없다. 한국외교가 그렇게 힘이 세지 않은 까닭이다. 북한 자신이 굶주림과 인권유린 속에서 살면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언행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반복함으로써 비정상적인 일종의 사교집단과 같은 조직이라는 이미지를 조성한 것이다.
하지만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전적으로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미국과 북한은 모두 핵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선거에 나타난 국민의 의사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주장해 온 민주당 좌파세력의 의사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대한반도 정책을 조정 중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러한 협상 과정은 수개월이 아니라, 수년이 아니면 그 이상 걸리는 험난한 여정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하나의 암초라도 튀어나오면 협상은 또다시 물 건너갈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14년을 보냈고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 이른바 ‘백년 하청(百年河淸)’이 그것이다.
우리 한국에 날아올 ‘북핵 청구서’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을 제외한 4개국이 중유와 에너지 지원 비용을 공동부담하기로 했지만 우리 부담은 n분의 1로 끝나지 않는다. 9·19성명에 따라 정부는 중유 말고도 북이 핵을 포기할 경우 200만 kw의 전기를 공급하고, 경수로 건설까지 지원하도록 돼 있다. 향후 9~13년 동안 총 6조5000억~11조 원이 들어가는 천문학적 규모의 대북 프로젝트다.
앞으로 지원이 재개될 것이 분명한 연간 50만 t의 비료와 30만 t의 식량은 별도가 될 것이다. 북한의 과거와 현재의 핵에 대해선 일언 반구(一言 半句)도 없는 한 장의 이행계획서를 위해 과연 이만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 우리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북핵에 잘못 대응해 물지 않아도 될 비용까지 지불하는 건 아닌지 철저히 검토해 봐야 한다. 그것은 핵문제의 해결을 향한 첫 걸음이요, 작은 성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핵무기가 없는 한반도인 것이다. 북핵이 그동안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과 북-미, 북-일관계의 정상화, 동북아 다자안보의 실험 등에 가장 큰 장애가 된 까닭이다.
북한의 핵 해결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따라서 앞으로 협상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첫째로 북한의 모든 핵무기, 핵물질, 핵프로그램의 완전 폐기가 협상안에 들어가야 하고, 둘째로 협상의 단계와 끝이 명확히 정해진 일정표가 나와야 한다.
이것이 되지 않는 한 북한 핵 협상은 끝나지 않을 협상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할 시점이다.
지금 북핵 문제 해결의 봄은 오지 않았다. 우리는 한편으로 북의 국제사회 참여를 받아들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미동맹을 보호할 줄 아는 지혜를 보여 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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