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주년 3·1절을 맞는다. 이날은 지난세기 일제의 불법적인 국권침탈과 무자비한 무단통치의 지배 속에 신음하던 우리민족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혼연일체가 되어 일제의 총검에 맞서 자주독립의 염원을 세계만방에 고하여 민족자존의 기개를 드높였던 날이다.
이날의 만세함성은 나라를 빼앗긴 우리민족의 자주독립의지와 애국심을 확인한 민족의 대서사시라 할 수 있는데 위기의 순간마다 우리민족의 애국애족정신이 발현되어 위기를 극복하고 3·1운동 거사를 성취하게 되었다. 이번 삼일절을 경축하는 의미에서 당시 긴박하고 숨가빴던 비화를 소개드리고자 한다.
비화의 첫번째는 1919년 당시 천도교의 교주이자 천하의 의걸 의암 손병희 선생은 기미독립선언서에 날인할 민족대표 33인을 구성함에 있어 소위 귀족명사나 구한국의 대관까지 포함할 것을 제의하여 학부대신이며 친일매국노인 이완용을 찾아 민족운동에 동참서명해 줄 것을 설득하였으나 실패했다.
그런데 설득과정에서 민족대표로 선정하여 서명할 사람들의 이름과 3·1거사의 결정적인 비밀들을 이완용에게 모두 말해버린 것이 문제였다. 다행히도 이완용은 같은 조선민족의 양심은 있었던지 이 거사를 적발하거나 탄로하지 아니함으로써 비밀리에 추진된 3·1만세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다.
둘째는 2월26일부터 고종황제의 인산일(장례식)을 앞두고 일경들이 특별경계를 펴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인 몇 사람만 모여도 일본인 형사가 뒤를 좇아 취조했기 때문에 3·1민족대표들이 비밀리에 독립선언서 서명식을 할 일시와 장소를 선택하는데 연기와 변경을 거듭하다가 결국 계동에 있는 김상규 집으로 결정하게 되었는데 3·1만세 하루 전날인 2월 28일 오후 8시에 이루어졌다.
독립선언서의 인쇄 역시 3만장이나 되는 물량을 늦어도 2월 28일 새벽까지 완료하여 포장해서 각 학교와 지방에 전달해야 했기 때문에 시일이 촉박하여 최남선이 운영하던 소규모 인쇄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고 제국신문사장을 지냈던 이종일이 운영하는 천도교 전속 보성인쇄주식회사에서 담당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종일 사장은 절대 비밀유지를 위해 공장감독 김홍규 한사람만을 남기고 직공들을 오후 4시에 모두 퇴근시키며 고종황제 장례식 예행연습을 구경하게끔 배려하는 것처럼 했다. 인쇄소에는 공장감독, 보성학교교장 최린, 사장 이종일만이 남아 인쇄작업에 착수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인쇄사실이 잠복근무를 하던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인 신철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고등계 형사는 사상범을 다루는 악질중의 악질들이었고 독사같은 존재들이었다.
더군다나 그곳의 조선계 형사는 대개가 일본인보다 더 악랄하게 동족을 학대하였다. 보성인쇄사가 신학기 개학전에 납품해야 할 인쇄물이 잔뜩 밀려 있을 시기인데도 직공들을 4시경에 모두 퇴근시킨 점이 수상하다 여긴 신철 조선인 형사는 혼자서 보성인쇄소를 찾아가 잠겨있는 문에 귀를 기울이기도하고 환기용 창문 틈으로 기웃거리기도 하다가 인기척이 없자 막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인쇄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신철은 권총을 빼들고 큰소리를 쳐 문을 열게 한 뒤 인쇄물을 확인하고 이들을 연행하려 했다. 보성학교교장인 최린은 신형사가 조선사람인 점을 들어 묵인해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는데 영문을 모르는 손병희 선생의 전화가 걸려왔다.
차질없는 인쇄작업의 완료 독려와 2월 28일 새벽까지는 포장해서 연락책들에게 전달하여야 한다는 통화내용임을 총을 겨눈 채 듣고 있던 신형사는 그 지시책임자가 누구인지를 캐기 시작했다.
최린교장은 중단할 수 없는 인쇄작업의 중요성을 착안하여 형사에게 묘책을 제시했다. “자신만을 연행한다면 총 지휘자의 집을 안내하겠다” 하고 신형사를 일단 인쇄소 밖으로 유인하여 인쇄를 계속하게 한 다음 함께 걸어서 손병희 선생 댁으로 안내했다.
당시 손병희 선생은 알려진 거부인데다 천도교의 교주로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는 터라 신철은 당황했다.
손병희는 신형사를 만나자 이 운동은 우리민족에게 있어 멈출 수 없는 매우 중요함을 설득하고 “이틀 동안만 발설하지 말고 참아주면 왜놈에게 민족을 판 돈이 아닌 우리 조선백성의 돈으로 신형사에 대한 감사의 뜻에서 돈으로써 도와주겠다” 말하고 최린에게 몇 천원만 가지고 나오라했는데 신철형사는 “선생님 그만 두십시오. 그냥 이대로 가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어둠속으로 뛰어 사라져 버렸다.
최린교장은 신형사를 쫓았으나 찾지 못했다. 결국 인쇄기는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손병희 선생은 5천원을 가지고 신철을 만나기 위해 그 이튿날(2.28) 꼭두새벽에 종로경찰서 숙직이 확인되었다. 드디어 신철이 동료형사 두 명과 함께 출근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신철은 고등계장에게 거짓보고 했다. “신의주 건너 안동 땅에 있는 불온한 조선인들이 이번 태왕전하 장례식을 틈타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는데 그 곳에 잠입해서 정보를 입수하고 공작하기가 일본인보다는 조선인이 몇 배나 나을 것”이라 했다.
신형사의 민첩한 두뇌를 잘 알고 있던 고등계장은 쾌히 승낙하고 동료 형사들도 모르게 두둑한 기밀비까지 내주면서 극비 출장을 허가 했다. 신형사를 만나기 위해 경찰서 안으로 들어온 최린 교장을 신형사는 밖으로 밀어내면서 나직이 속삭였다. “염려마십시오. 저 역시 조선사람입니다. 밤새 생각해 보아도 제가 일본사람은 아니더군요. 부디 선생님들 하시는 일이 성사되기를 빌겠습니다. 저는 9시에 남대문역을 떠나는 신의주행 기차를 탑니다. 내일 만세를 부르는 선생님들을 뒤쫓아 수갑을 채우는 일만은 하고 싶지 않은 심정입니다”라 말한 뒤 도망치듯 달아났다. 최린교장은 그 뒤를 뒤쫓았지만 허사였다. 이후 신철의 소식은 없었다. 결국 독립선언서 인쇄작업은 2월27일 오후 6시25분부터 시작되어 28일 오전 5시반까지 완료되었다.
이러한 극적이고 긴박한 순간들을 거쳐 독립선언서는 전국의 주요 연락처에 배포되어 역사적인 3·1만세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성공적으로 물결을 이루게 되었다.
3·1운동으로 확인된 독립열망의 의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탄생케하는 원천이 되었고 민족정기의 대동맥이 오늘에 이어져 세계속에 비약하는 대한민국으로 우뚝서게 했다. 3·1만세운동을 통해 우리민족의 우수성과 국민의 애국정신이 바탕이 되어 국가발전과 조국통일에 기여할 수 있음을 깊이 되새겨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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