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불러서 나갔더니 아파트를 새로 샀다고 자랑이 깨가 쏟아진다. 집으로 걸어오면서 어렸을 때 친구들과 마음대로 뛰어 놀던 마당과 시골집이 생각났다. 그리고 중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면서 보았던 인천과 서울을 잇는 고층아파트들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단지 아파트 건설이 어떻게 그토록 급격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아파트를 향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열광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파트 단지 개발의 역사를 들여다봤다.
아파트의 역사는 서울의 역사요, 우리나라의 역사다. 도시집중화가 이루어지면서 1958년 서울에서 건설된 종암아파트는 서울지역에 일반화될 아파트의 선구적 사례로 꼽힌다. 성북구 종암동 서울시 소유지에 외국차관으로 주택영단이 지은 5층짜리 3개동 아파트는 ‘아파트먼트하우스’라는 용어를 처음 도입하였고 ‘아파트’라는 말도 여기서 생겨났다. 수세식 화장실도 처음이었다.
다음으로 생겨난 마포아파트는 처음엔 10층 규모에 보일러를 사용하도록 설계를 했으나, 외국의 반대로 연탄 난방에 승강기 없는 6층 소형아파트로 지어졌다. 마포아파트의 중요성은 642세대라는 규모보다 아파트단지의 특징적 요소를 발전시킨 그 선구적 양상에 있다. 마포아파트는 아파트단지 개념을 확립한 초기 현대식 아파트로 평가된다.
그러나 서울시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것은 연탄보일러에다 소형이어서 자부심을 자극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더구나 와우아파트의 사태가 일어나면서 높은 아파트에 대한 경계심이 생겨난 결과이기도 하다.
1971년에 완공된 강북의 동부 이촌동단지는 10년 후 강남에 대량으로 건설될 아파트단지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30헥타르에 3천260세대인 이 아파트는 20평에서 80평까지로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가장 큰 평수는 부유층이 사는 저택이라는 의미로 ‘맨션’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붙여졌다. 게다가 아파트 전 세대가 기름 보일러식 중앙난방이었다.
이어서 1974년 지어진 반포아파트는 ‘아파트는 부유층이 사는 곳’이라는 점을 각인시켰다. 분양추첨제가 도입되기도 했다. 반포보다 다섯 배가 큰 잠실단지가 조성되면서 ‘잠실뉴타운’이 탄생했다. 초대형 아파트의 효시이며 아파트 단지 표준화 시대로 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압구정동의 현대아파트가 건설되고 아파트는 부자들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계속 자리 잡아간다.
한강변의 아파트군은 새로운 도시 형태를 만들면서 아시안게임과 서울 올림픽을 맞아 선수촌 건설로, 부동산 시장의 활황기를 맞는다. 이어서 양천구와 방배동에 아파트단지가 생기면서 아파트 건설은 도시주변으로 이동하고 다시 신도시 개발로 이어진다. 일산, 분당의 신도시가 생기고, 합동 재개발 사업이 도입되면서 중산층의 유입과 하층이 밀려나는 사회 계층적 변화가 일어난다.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아파트단지는 확장되고 주변의 도시들이 생겨나는 양상이었다. 다른 도시들도 따라서 아파트 건설에 열을 올린 나머지 우리나라는 아파트 공화국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새 것에 대한 무조건적 숭배와 부의 과시를 한층 강화시켜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것은 서구인이 발전시킨 이미 지어진 가옥의 영속성에 더 집착하는 ‘축적의 문화’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유동의 문화인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도시산업사회로 빠른 전환을 거치며 끊임없이 질주하여 온 아파트는 개인의 행복보다는 ‘사회적 행복’이라는 특별한 비전에 접목된 한국적 발전 모델의 압축적 표상인 셈이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부의 외형적 표시를 선호하는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전국으로 퍼져버린 대단지 아파트는 도처에서 대규모 도시 문제뿐 아니라 정치적 초점들을 결집시키며, 여러 형태의 감시체제를 발전시켜가고 있다. 아울러 문화적 전통을 통째로 잃어버리고 전통을 이어가는 것을 방해받고 있다. 아울러 소음과 화재위험 등도 공유하며 살아간다.
아파트는 진화와 변화를 거듭하여 유비쿼터스 서비스를 하는 한편 U-KEY 비상버튼이 작동하는 ‘유비쿼터스형 보안 아파트’가 대세인 시점까지 왔다. 그러나 서민은 호전되는 지표에도 불구하고 딱딱한 삶을 이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내 집 마련은 커녕 전셋값 따라 잡기도 버겁기 때문이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한옥을 마다 하고, 위 아래층에서 시끄럽고 화재의 위험이 있는데도 편리성을 이유로 넓은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은 우리의 주거문화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코믹스-200727.jpg)
.gif)
돌아가기
.jpg)
 (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