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에 대한 일부 보수세력의 공격이 법관의 신변을 위협하는 수준이다. 충격적 현상이다. 그것은 나라의 근본을 뒤흔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라는 보수단체 회원들은 지난 19일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모 판사 집 앞으로 몰려가 항의집회를 열었다. 20일 오후에는 나라사랑실천운동 회원 등 30여명이 용산참사 수사기록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린 모 부장판사 집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무죄판결이 내려진 피디수첩 공판정에서도 보수단체 회원들은 “판사 옷 벗겨라”는 등의 고함을 치며 소란을 피웠다.
이 재판의 담당 판사도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압력을 가하면 어떤 법관이 마음 놓고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겠는가. 시위자들은 바로 그런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본다.
이야말로 사법부 독립과 법관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헌법 103조는 법원 독립과 관련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양심이란 ‘자기 행위에 옳고 그름과 선악(善惡)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인 것이다.
양심은 영어의 ‘conscience’를 양심으로 옮긴 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를 고려하면 양심보다는 신념이 본래 뜻에 가까운 듯하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양심을 뜻하는 ‘Gewissen’을 “정당하다고 믿는 신념”이라고 간명하게 정의했다. 우리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 가치가 허물어질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정의한 것도 독일의 규정을 닮았다고 본다.
결국 헌법은 재판의 독립을 법관 개인의 신념에 맡겼다고 할 수 있다. 헌법과 법률 해석을 넘어서는 영역에서는 재량을 주는 동시에 ‘양심에 따라’라는 제한을 둔 셈이다.
작가 이문열씨는 몇해 전에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킬 진지들이 진보세력에 함락됐다”고 말했는데, 문화계뿐 아니라, 이젠 법조계까지 진보세력에 잃을지 모른다.
진지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원은 여러 진지 가운데서도 보수의 가치에 가장 충실해야 할 핵심 기지다. 그런데 그 진지가 1980~90년대 대학생활을 한 ‘386운동권’ 출신 판사들에게 함락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모든 걸 보수-진보 대결의 관점에서 보고, 지키고 획득해야 할 진지로만 본다. 공존(共存)과 화합(和合)은 안중에도 없다. 운동권이든 아니든 80~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에겐 일종의 공감대 비슷한 게 있다. 그걸 이념적으로 ‘진보’라 규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독립적 판결’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다. 아무튼 과거와는 다른 분위기가 있는게 사실이다.
시대는 변한다. 법원도 변하고 판결도 변한다. ‘이단’이란 논란에 휩싸인 판결이 수십년 후 주류 판결이 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보수세력은 법원의 몇몇 판사들만 없으면 되리라 생각하겠지만, 우리 현대사에서 수십년의 민주화 투쟁 시기를 지워버리지 않는 한 변화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보수들의 격한 반발은 사실 민주주의의 진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속마음의 표현이라 여겨진다. 오늘에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판결 하나에 야단법석을 떠는 것은 너무 협량(狹量)하다. 보수주의자들은 좀더 폭을 넓혀야 한다. 그것이 보수주의의 미덕인 까닭이다.
우리는 보수-진보의 이념 논란을 지양해야 한다. 진정 잘못된 판결이라면 수년, 수십년 후엔 자취도 없이 잊혀지기 때문이다. 사법 개혁 명분은 좋지만, 개별 판결과 법관을 시비하는 것은 이제 보수든 진보든 그만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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