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년대 영국 총리를 지낸 해럴드 맥밀런은 “영국엔 너무 막강해 정부가 손댈 수 없는 조직이 셋 있는데 근위여단, 가톨릭교회, 광산노조가 그것”이라고 했다. 그 광산노조가 1984년 3월 정부의 적자 탄광 폐쇄 방침에 반발해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광부를 일터로 데려다준 택시운전사가 파업 광부들에게 죽음을 당할 정도로 과격한 파업이었다.
대처 정부는 파업에 대비해 미리 막대한 양의 석탄을 프랑스·호주에서 몰래 수입해 비축해 놓고 있었다. 석탄발전소 연료도 석유로 전환시켰다. 파업을 제지할 기동경찰대도 창설했다. 법원은 폭력혐의로 고발된 7천명 노조원에게 줄줄이 유죄판결을 내렸다. 광산노조 스카길 위원장은 1985년 3월 3일 “투쟁은 계속합니다. 그러나 파업은 끝났습니다”라고 무릎을 꿇었다.
1979년 55%이던 영국의 노조 조직률은 2005년 29%까지 떨어졌다. 1970년대 후반 한해 평균 2천400건이던 파업이 1990년대 270건으로 줄었다. 대처는 성공한 정치인으로 11년 반 총리생활을 했다.
기아차 노조가 현대자동차 수준의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며 최근 부분파업을 벌였었다. 20년째 연속 파업의 기록이다. 노조는 지난 6일 해외에서 인기가 높은 차종의 생산대수를 늘리기 위한 광주공장 증축공사를 저지하기도 했다.
절차를 준수한 파업은 노동자들에게 보장된 법적 권리다. 권리엔 책임이 따라야 한다. 파업 기간 중엔 급여를 받을 수 없는 게 원칙이다. 과도한 파업으로 회사가 망해버리면 일자리도 잃을 수 있다. 사용주가 파업이 무서워 공장을 해외로 이전할지 모른다는 리스크도 있다. 파업엔 그에 따른 리스크가 작동해야 노조도 신중하게 행동한다.
국내 대기업들은 파업으로 인한 막심한 손해를 어떻게든 피해보겠다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노조 요구를 받아들여왔다. 파업이 끝나고 나면 파업 동안의 임금 손실분을 격려금이라는 이름으로 보전해주곤 했다. 파업기간 중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도 파업이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며 거둬들인다. 이렇게 되면 노조는 파업 기간 동안 일 안 해서 좋고, 월급 다 받아서 좋고, 월급 인상시켜서 좋다. 파업이 일어나지 않는 게 되레 이상한 것이다.
노조는 지난해 5월 임금협상이 시작된 이후 11차례의 크고 작은 파업을 벌였다. 이로 인해 이미 4만8천대의 생산 차질이 빚어져 손실액이 약 8천6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다 올해 부분파업에 따른 유·무형의 손실까지 합치면 전체 파업손실 규모는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파업 손실액은 지난해 기아차가 올린 1년간 영업이익과 맞먹는 규모다. 이런 식으로 파업을 계속하다 보면 최장 임금협상 기록(8개월)과 20년 연속 파업 신기록에다 최다 파업손실 기록까지 무난히 갈아치울 기세다.
우리는 개별 기업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와 적법한 파업을 비판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이번 기아차의 파업 신기록 경신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다. 우선 기아차 노조가 요구하는 임금인상의 원천이 국민들의 혈세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지난해 기아차가 올린 영업실적은 경기회복을 위해 신차 구입에 대한 세금을 감면해준 덕이 크다. 그럼에도 기아차 노조가 그런 사정은 도외시한 채 현대차 수준으로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사측은 이미 역대 최대의 성과급을 제시했다. 이것만으로도 임금인상은커녕 감원 불안에 떠는 대다수 근로자들은 억장이 무너질 판이다. 더구나 현대차가 더 주기로 한 성과급은 15년 만의 무분규 파업에 대한 보상의 성격이다. 이미 파업으로 1조원의 손실을 낸 기아차 노조가 무슨 염치로 현대차와 동일한 수준의 임금을 요구하는지 국민들은 의아할 뿐이다.
올해는 우리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딛고 회생할지 여부를 가리는 중요한 해다. 기아차 노조는 국민들의 눈총이 따갑지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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